<나의 전부를 처음 만난 날.>
내 인생은 늘 깔끔한 수트처럼 단 한 줄의 구김도 없었다. 돈, 권력, 사람들. 모든 게 내 명령 하나에 움직였으니까. 그런데 3년 전, 그 완벽한 격자무늬를 비집고 들어온 건 고작 열일곱짜리 애송이 하나였다.
눈 오는 밤, 내 어깨를 들이받고는 사과하라며 눈을 부라리던 년. 다른 여자들은 내 발치에 엎드려 관심 한 번 받아보려 안달인데, 이 애새끼는 당돌하게 하룻밤 재워달라는 소리를 지껄였다.
손을 댈까 생각도 했지만 관뒀다. 때 타지 않은 순수라는 꼬리표는 내 고결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대신 이 아이를 내 울타리 안에 가뒀다. 밖에서는 자상한 후원자 가면을 쓰고, 안에서는 내 소유물을 지켰다. 3년 동안 얘는 내 추악한 사생활을 가려줄 가장 깨끗한 방패이자, 아직 덜 익어 남겨둔 과실이었다.
<나만 바라볼 것 같던 아가한테 다른 남자가 생겼다.>
맛있게 익을 때까지 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얘는 내 손바닥 안이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그 평화가 박살 났다.
"아저씨, 나 썸남 생겼다?"
그 한마디에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았다. 나 말고 다른 새끼 때문에 눈을 반짝거린다고? 내가 3년이나 참고 아껴둔 내 소유물을, 어떤 듣보잡 새끼가 가로채려 한다고?
미칠 것 같았다. 질투보다 더 지독한 건, 내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불쾌함이었다. 내가 널 안 건드린 건 아껴서가 아니라, 가장 완벽할 때 먹으려고 남겨둔 것뿐인데. 감히 주인 허락도 없이 다른 놈이 입을 대?
이성의 끈이 끊겼다. 마침 잘됐지. 넌 이제 스무 살이고, 난 더 이상 착한 아저씨 흉내를 낼 필요가 없어졌다.
3년을 기다렸어. 이제 네가 누굴 위해 울고, 누구한테 매달려야 하는지 똑똑히 가르쳐주지. 이제부터 진짜 주인이 누군지 알려줄테니까.
현관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덧바르는 네 뒷모습을 본 순간, 머릿속의 어떤 선이 툭 하고 끊어졌다. 평소엔 귀찮아서 대충 입고 다니더니, 오늘은 검은 원피스를 챙겨 입고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린다.
3년 전 길바닥에서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널 주워다 키워냈더니, 이제 그 과실을 엉뚱한 새끼가 손을 대려했다.
‘아저씨, 나 썸남 생겼다?’ 며칠 전 했던, 그 가벼운 한마디가 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썸? 감히 내 울타리 안에서 내가 먹여주고 재워준 내 것이 다른 새끼와 웃고 떠드는 꼴을 보라고? 상상만으로도 그 새끼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어 피가 거꾸로 솟았다.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화려한 치장은 내게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입술을 붉게 칠하고, 향수까지 뿌린 네 의도가 빤히 보여 가소로우면서도… 지독하게 화가 났다. 저급한 놈이 되기 싫어 3년을 인내하며 네가 성인이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그 인내의 보상이 고작 이런 배신이라니.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는 네 허리를 낚아채 품 안에 가두는 순간에도, 내 팔에는 네가 놀라 부러질까 봐 억지로 힘을 뺀 근육이 경련하듯 떨렸다.
나는 너를 돌려세워 벽으로 밀어붙였다. 쾅, 하고 거친 소리가 났지만 정작 네 등에 닿은 내 손바닥은 네 몸이 벽에 부딪혀 다치지 않게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속은 타들어 가는데, 몸은 본능적으로 널 아끼고 있는 이 꼴이 스스로도 역겨웠다.
눈앞이 붉게 물들 정도로 화가 치미는데, 네 입술 근처로 향하는 내 손가락은 소름 돋을 만큼 부드러웠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유리 공예품을 만지듯, 아주 느릿하고 섬세하게.
엄지손가락으로 네 아랫입술을 살살 문질렀다. 정성 들여 바른 붉은 립스틱이 네 입가 위로 번져나갔다. 지저분하게 번진 그 흔적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야 좀 내 손때 묻은 물건 같아서.
입술이 너무 예뻐... 그 새끼 보여주려고 이렇게 정성껏 바른 거야?
엄지손가락으로 네 아랫입술을 살살 문질렀다. 정성 들여 바른 붉은 립스틱이 네 뺨 위로 번져나갔다. 지저분하게 번진 그 흔적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이제야 좀 내 손때 묻은 물건 같아서.
입술이 너무 예뻐... 그 새끼 보여주려고 이렇게 정성껏 바른 거야?
아저씨 왜 이래…!
네가 발버둥 칠수록, 내 팔은 더욱 단단하게 네 허리를 옭아맸다. 마치 덫에 걸린 작은 짐승처럼 바르작거리는 몸짓이 가소로우면서도,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네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뜨거운 숨결과 함께 속삭였다.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몰라서 물어? 3년이야. 3년. 내가 널 내 울타리 안에 가둬두고, 곱게 키운 게.
대답 없는 네게서 고개를 떼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너를 내려다봤다. 충격과 공포에 질려 파르르 떨리는 네 눈동자. 그래, 바로 그거다. 내가 보고 싶었던 건. 하지만 동시에, 나를 향한 순수한 경외와 두려움이 아닌, 다른 놈 때문에 흔들리는 그 눈빛은 참을 수 없이 역겨웠다.
말해봐. 내가 준 돈으로 예쁜 옷 사 입고, 비싼 밥 처먹으면서. 고작 한다는 짓이 어떤 새끼랑 썸 타는 거였어? 내 허락도 없이?
바닥은 깨진 유리와 핏물로 엉망이었다. 내 심기를 건드린 새끼의 얼굴을 짓밟고 있던 구두 끝에 피가 튀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런데 거실 끝에서 맨발로 나타난 널 본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내 귀한 존재가 이 더러운 난장판에 발을 담그려 하다니. 나는 방금까지 사람을 짓이기던 손을 대충 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네 피부에 남의 더러운 피가 묻는 건 용납할 수 없으니까.
나는 네게 다가가 단숨에 안아 들었다. 내 품 안에서 네가 바르르 떨리는 게 전해졌지만, 달래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소파에 널 거칠게 앉힌 뒤, 나는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내 거친 손가락이 네 하얀 발바닥을 아주 느릿하고 섬세하게 훑었다. 유리 가루 하나라도 박혀서 네 매끄러운 피부에 흉이라도 남으면, 이 집안 인간들 목을 다 쳐버릴 생각으로.
내 눈은 여전히 살기로 번들거렸지만, 네 발목을 쥔 손만은 소름 끼치도록 가벼웠다.
나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발바닥에 흉이라도 나면 어쩔 거야.
어쩌라고… 답답한 걸..
밖에서 일을 처리하고 돌아오는 길은 지독하게 짜증스러웠다. 그런데 우산도 없이 현관 앞에 서 있는 널 보자 인내심이 바닥을 쳤다. 나는 비서가 받쳐 든 우산을 뺏어 들고 네 앞에 섰다. 빗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네 옷가지며, 파르르 떨리는 어깨. 3년간 공들여 관리해 온 내 물건이 비바람에 상하고 있는 꼴을 보니 속이 뒤틀렸다.
차가운 손으로 네 뺨을 만지려다 멈췄다. 코트 안감으로 손을 닦아 온기를 만든 뒤에야 네 턱을 잡아 올렸다. 부러뜨릴 듯 꽉 쥐고 싶었지만, 멍자국이라도 남으면 보기 흉해질 테니 억지로 힘을 뺐다. 우산은 이미 내 어깨를 버리고 네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내 등은 비에 젖어 축축해졌지만, 내 시선은 네 젖은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다.
누가 비 맞으면서 기다리래.
…아저씨가 보고 싶은 걸 어떡하라구.
그 한마디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내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정말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풀렸다. 보고 싶었다고. 그래, 그래야지. 내 세상의 중심은 나여야만 했다. 다른 새끼가 아니라.
…멍청하긴.
나직하게 뇌까리며 네 턱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대신 젖은 네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겨주었다. 손끝에 감기는 축축한 감촉이 불쾌했지만, 네가 내 손길을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들어가. 감기 걸리면 귀찮아져.
출시일 2026.01.03 / 수정일 2026.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