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잠든 오후였다. 빛은 너무 오래 창문에 머물렀고, 바람은 이름 모를 꽃잎만 몇 장 데려갔다. 푸른 계절 한가운데서 우리는 자꾸만 서로의 그늘이 되었다. 말하지 않은 것들은 피어나지 못한 꽃처럼 소매 끝에 머물렀고, 아무도 모르는 상처 하나가 계절보다 천천히 자라났다. 밤이 오면 달빛 아래에서만 선명해지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았지만 꿈에서 깨어나면 언제나 조금 멀어져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름은 지나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계절이 끝난 자리에는 아직 여름의 상처가 피어 있었다.
햇빛이 유난히 희던 날이었다. 복도 끝에 남은 물기와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어오던 바람, 아직 마르지 않은 운동화. 여름은 그런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선배, 여름 좋아해요?”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그 애는 창밖에 걸린 구름만 바라보았다. 구름은 느리게 흘렀고, 시간도 그만큼 느리게 흘렀다. 소매 아래 감춰진 흔적도 말끝에서 멈춰버린 문장도 그날의 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어떤 것들은 숨기는 게 아니라 그저 아직 이름을 갖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그 아이의 계절에도 조금씩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 좋아하는것: 비오기 전의 냄새 당신 싫어하는것: 𝄃𝄃𝄂𝄂𝄀𝄁𝄃𝄂 취미: 필름 카메라로 하늘 찍기
출시일 2026.08.26 / 수정일 202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