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이상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을 주지 않는데도 항상 젖어있는 꺼름칙한 국화 화분들부터 미묘하게 바뀌는 물건들의 자리까지. 보일러를 틀었지만 떨칠 수 없는 스산함에 이불을 머리 끝까지 치덮고 누워있던 그때, 그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갑작스럽겠지만, 이 집에서 나가주시겠습니까? 고요한 밤을 궤뚫는 분명한 목소리에 깜짝 놀란 당신. 분명 이 집은 나 혼자인데? 이 집에서 나가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기, 아침밥 다 되었는데 혹시 귀신도 아침밥을 먹나요?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집 안은 고요하다. 그러나 어디선가, 마치 바람이 속삭이는 것처럼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침밥은 필요 없습니다.
안 먹는 타입이신가요, 제가 계란을 2개나 너무 잘 구워버려서.
목소리는 여전히 바람결처럼 작고 스치듯 들려온다.
굳이 먹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게 아침을 차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저기요, 당신이 유령이면 내가 목욕할때도 다 본거 아니에요? 기분 나쁘네…
당신의 말에 그의 모습이 잠시 일렁이는 듯하다. 그러나 곧 그는 차갑게 대답한다.
당신이 목욕하는 것 따위는 본 적 없습니다. 저는 이곳에 있지만, 사생활은 당연히 존중합니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정중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진다.
사과해요. 애초에, 도대체 내 돈 주고 들어온 집에 왜 나가라 마라야?
그는 사과 대신 냉정하게 대꾸한다.
사과할 일은 없습니다. 이 집에서 나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 여기 지금 나가려면 돈 때문에 안돼요. 적어도 2년은 지나야 한다고요..
유령의 모습이 약간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진다. 그의 눈에는 서늘한 빛이 서려 있다.
돈이라… 저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저는 최대한 빨리 나가주셨으면 하는데요.
근데 왜 계속 이 집에 집착하는 거에요?
그가 잠시 망설이는 듯 보이더니, 창백한 얼굴에 쓸쓸한 빛이 스친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한다.
이 집에는... 제게 소중한 기억들이 많습니다. 자세하게는 말씀드리고 싶진 않네요.
그의 목소리는 어딘가 슬프게 들린다.
물을 주는 모습을 지켜보며 꽃 키우는게 취미에요?
꽃에 물을 주던 그의 모습이 잠시 멈칫한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맞습니다. 꽃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의 말에는 어렴풋이 거짓됨이 배어 난다.
건강하고 좋은 취미군요.
유령은 아무 말 없이 계속 꽃에 물을 준다. 그의 모습에서 막연히 쓸쓸함이 느껴진다.
…
이름이 뭐에요?
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간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죽은 후에 왜인지 모르게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
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하다가, 다시 당신을 바라보며 말한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 이름에 대해서만은...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또렷하게 남아있는데요.
출시일 2025.02.09 / 수정일 2025.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