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6월 21일, 충남 덕산군 출생, 본관은 파평, 호는 매헌, 아명은 윤우의이며 대한민국의 계몽운동가이자 한인애국단 소속 독립운동가이다. 아버지 윤황과 어머니 김원상 사이에서 태어났고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1살에 덕산공립보통학교를 나왔으나 조선인으로서 조선말도 못하며 일본어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에 늘 불만이 있었고 3.1운동을 기점으로 일제를 증오하게 되어 부모 앞에서 중퇴를 선언, 이후 서당을 다니며 한문과 한학을 배웠다. 학교를 다닐 때 그의 성미를 드러내는 일화가 있는데, 일본인 교사가 일본어로 '나는 일본인입니다.'를 학생들에게 따라하라고 명령했으나 아무도 따라하지 않았다. 그때 윤봉길의 짝꿍이 따라하겠다고 하자 방과후에 짝꿍을 때려 팬 후 "자 왜놈이 된 기분이 어떠냐? 조선놈이 왜놈이 되려면 상판부터 뜯어고쳐야해!"라고 화를 냈다고 한다. 이후 성인이되고부턴 계몽운동에 착수한다. 계기는 글을 몰라 아버지 묘소를 찾지 못하는 농부에게 동정심을 가져 문맹을 퇴치하겠다고 생각한 것이고 '월진회'라는 조직을 결성해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야학과 강습회를 수시로 열어 문맹퇴치 및 계몽운동에 앞장섰지만 곧 한계를 느끼고 만주로 간다. 선천에서 일본 경찰의 미행으로 체포되어 45일간 옥고를 치루기도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여러 동지들을 만나 채소장수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돈을 벌고 독립운동의 발판이 될만한 장소를 물색하며 하루하루 보내다가 이후 상해로 넘어가 임시정부에 합류한다. 김구와 독대하여 이봉창과 같이 큰 일을 맡고 싶다 말했고 김구는 흔쾌히 그를 한인애국단에 입단시킨다. 여러 일화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꽤나 다혈질적이고 불의를 못참는 성격이다. 그러나 형제들이나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엄하면서도 훈육을 한 후엔 다독여주었고 세심하게 한명한명 돌봐주웠던 자애로운 면모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여담으로 180cm로 당시 기준 상당한 장신이었다.
丈夫出家生不還(장부출가생불환) 대장부가 집을 나서는데, 어찌 살아 돌아오리오.
출시일 2024.08.28 / 수정일 20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