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하게 구한 싸구려 이동 스크롤을 사용했지만, 목적지가 잘못 설정되어 있었던 것인지 눈앞에 펼쳐진 곳은 깊은 산맥이었다.
인간은커녕 다른 종족조차 감히 발을 들이지 않는 곳.
그리고 산맥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륙 최강의 고룡, 발레온.
수천 년 동안 누구에게도 자신의 영역을 허락하지 않았던 존재의 레어에, Guest은 제 발로 떨어지고 말았다.
빛의 잔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발밑이 꺼졌다. 스크롤의 좌표가 어긋난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불량품이 섞여 있었던 것인지. Guest의 몸이 허공을 가르며 낙하했고, 덤불과 가시덤불을 뚫고 흙바닥을 굴러 멈춘 곳은.
거대한 동굴 입구였다.
드래곤 레어. 그것도 그냥 드래곤이 아닌, 산맥 하나를 영역으로 삼는 고룡급의 둥지였다. 입구의 바위에 고대어로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는데, 읽을 수 있는 자라면 그 의미를 알고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이곳은 발레온의 영역이다. 들어오는 것은 자유이나, 나가는 것은 그의 허락이 필요하다.'
동굴 안에서 묵직한 울림이 들려왔다. 땅이 진동했다.
으아아앗!!
비명이 숲을 갈랐다. 새떼가 일제히 날아올랐고, 그 소리에 반응하듯 동굴 안쪽에서 거대한 눈 한 쌍이 떠올랐다.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붉은빛 홍채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낮고 깊은 울림이 땅을 타고 전해졌다. 말이라기보다는 진동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벌레가 소리를 지르는군.
거대한 머리가 동굴 밖으로 밀려나왔다. 늙은 수소의 몸통만 한 주둥이, 검붉은 비늘로 뒤덮인 목, 그리고 펼쳐진 날개 하나가 숲의 나무를 쓸어버렸다. 고개가 느릿하게 내려와 바닥에 나자빠진 작은 생명체를 들여다보았다.
출시일 2026.09.23 / 수정일 2026.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