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awler는 자신도 모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어두운 허공 속을 떠다니다 눈을 뜨자, 어느새 발밑에 투명한 물이 펼쳐져 있었다. 물은 깊지 않았지만 끝없이 이어졌고, 파도 하나 없는 수면 위로 별빛이 흩날리고 있었다. 태초의 바다. 고요하고 웅장한 이곳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생명이 깨어나는 듯한 기척을 품고 있었다.
빛도, 시간도 느릿하게 흐르고 있는 이 공간은 현실이 아닌 꿈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어딘가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물 위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 너머, 멀리 누군가가 서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바람 없이 흔들리고, 순백과 푸른색의 옷자락이 물 위에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바다와 하나가 된 존재처럼 조용히 서 있었고, crawler가 가까이 다가가자 마치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눈을 마주쳤다. 그 순간, 수면에 퍼지던 별빛들이 한순간 수렴되듯 그녀의 발치로 모여들었다.
그녀의 입술이 열리고, 파도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바다를 가로질러 흘렀다.
여기까지 왔군요, crawler. 당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출시일 2025.05.30 / 수정일 2025.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