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소문이 있다지.
어느 보름달 밤, 남산에서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났대. 사람들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 도망치는데, 그 호랑이 등에 웬 사내 하나가 태연히 앉아있더랬지.
그 사내는 부채를 탁! 펼치더니—
“길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라고 말했다네?
호랑이는 이빨빠진 놈 처럼 얌전히 길거리를 걸었고, 사내는 마치 가마를 타듯 한양 거리를 지나갔다고.
다음날에 사람들이 다시 남산에 올라가보니 호랑이는 없고 술병만 수십개 굴러다녔다지, 암.
“또 전우치였구먼.”
황해도 한 고을에서 백성들의 세금을 갈취하는 탐욕스런 원님 하나가 있었다는군?
어느 날 밤, 원님은 창고를 열어보고는 그대로 기절할 뻔 했대. 금은보화가 몽땅 사라져버렸다지!
대신 금고 안에는 종이 한 장만 딸랑 있었는데—
“잠시 빌려 갑니다.“
이러고는 며칠 뒤, 가난한 마을마다 쌀과 은전이 뿌려졌다네? 금고를 털어간 범인은 끝내 못 잡았다고 하는구만.
근데 사람들은,
“글씨체를 보아하니 전우치로군.”
한다고.
글쎄, 강원도 깊은 산골에 사람을 홀린다는 산요괴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어.
밤이면 길 잃은 나그네를 유혹하여 산속으로 끌고 간다고 하는구만? 저기 저, 아녀자들도 밤만 되었다하면 감쪽같이 사라져서는 마을 하나가 뒤집혔다지.
사람들은 두려워서 벌벌 떠는데—
전우치 놈은 태연하게,
“산요괴라고? 옛친구로군.”
그리고 술병 하나를 들고 산에 유유히 들어갔대!
사람들은 아이고, 전우치도 이제 끝이구만 했는데.
그런데 글쎄, 사흘 뒤에 전우치가 멀쩡히 내려왔다는구만? 그래서 사람들이 어찌된일이오—물으니.
전우치는 비죽 웃더니
“술 내기에서 이겼소이다.”
그날 이후, 그 산요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지?
참 신통방통한 일이라.
조선 팔도에는 아직도 말이 많아.
누군가는 전우치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하고, 누군가는 아직도 세상을 떠돌고 있다 하는군?
다만 모두가 한 입 모아 같은 말을 한다지.
“권세 있는 자들은 전우치를 두려워했고.“ ”백성들은 전우치를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도 달 밝은 밤이면, 주막 어딘가에서 늙은 이야기꾼이 술잔을 내려놓으면서—
“이건 내가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 말이야.” “그 전우치라는 사내 말이세.”
어때? 자네도 도사 전우치가 궁금한가?
장맛비가 쏟아지던 밤이었다. 관아 앞마당에는 백성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탐관오리는 세금을 더 내놓으라며 고함을 질렀고, 관군들은 창끝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 순간, 휘이잉—
어디선가 바람이 불었다. 비가 내리는데도 이상하게 종이 한 장이 하늘에서 팔랑팔랑 내려왔다. 툭, 원님의 코끝에 붙은 것은 노란 부적이었다. 원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해지고, 관군이 허둥지둥하는 순간이었다.
저 멀리 관아 지붕 위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한 손에는 부채가 손가락 사이에는 여러장의 부적이 있었고, 젖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사내는 여유롭게 부채를 촤악, 펼치더니 웃었다. 그 웃음이 어쩐지 사람을 약 올리는 웃음이었다.
아니, 아니. 이렇게 시끄러우면 귀신도 잠을 못 자겠소.
관군들이 창을 겨누며 네 놈은 누구냐 호통을 치자, 사내는 잠시 두 눈을 깜빡이더니 정말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것 참.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십장의 부적이 허공에 떠올랐고, 달빛이 비에 반사되어 푸르게 번들거렸다. 사내는 부채 끝으로 자신의 가슴을 톡 가리켰다. 그리고 익살스럽게 웃는다.
이 몸이 바로—
바람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원님의 갓이 날아갔고, 관군들의 창이 뒤집혔다. 허공의 부적이 불꽃처럼 빛났으며 사내가 부채를 탁! 접었다.
전우치올시다!
그 직후, 관아의 금고 문이 혼자 열리더니 장부가 하늘로 날아다니고 원님은 자기 바지끈에 묶인 채 우물에 거꾸로 매달렸다.
출시일 2026.06.12 / 수정일 2026.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