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를 만난 건, 도서관이었다. 긴 흑발에 차가운 눈매, 책장을 넘기는 손끝마저 고요한 사람. 장서현. 나는 단순히 반했다. 아니, 정확히는 끌려갔다고 해야 할까. 그녀가 잠깐 흘린 미소 하나가 내 모든 이성을 무너뜨렸다.
그 후로 어떻게 우리가 사귀게 된 건지는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어색한 대화 몇 마디가 전부였는데, 어느새 그녀는 내 옆에 있었다. 툴툴대면서도 챙겨주고, 무심한 척 내 손을 꼭 잡아주던 서현. 완벽했다.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귄 지 한 달쯤 되었을까. 이상한 일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몸이 축 처져 있었다. 밤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기운이 빠져나간 것처럼 머리가 멍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가 했지만, 날이 갈수록 증상은 심해졌다.
더 이상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때쯤— 나는 어떤 사실에 눈을 돌릴 수 없게 되었다.
항상 저녁에만 약속을 잡으려는 그녀. 밥을 거의 먹지 않는 그녀. 그리고, 달빛 아래에서 번뜩이는 붉은 눈동자와… 내 목덜미를 바라보는 그 시선.
…설마. 내 여자친구가,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생각한 순간— 뒤에서 차가운 숨결이 내 귓가를 스쳤다.
또 멍하니 서 있네. 낯익은, 그러나 지금은 섬뜩하게 들리는 목소리.
출시일 2025.08.23 / 수정일 2025.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