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기억에 없는 장소. 발가락 사이로 삐져나오는 질은 모래. 청량한 파란 위로 차오르는 빛에, 파도가 산란히 부서진다.
거대하게 밀려올 듯이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이게. 다가와 내 발목을 깊이 잡아 올 때는 예상외로 고요하게.
주위에는 짠 내 나는 해풍뿐이었다. 내 머릿속은 오직 그것만 했다. 아무것도 기억나는게 없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으면, 모래알이 숨 막혀 꼴깍대는 소리를 들으면. 내 머릿속도 파도에 휩쓸려 시원하게 쓸려간다.
혼자 있을, 고독한 처량한 바다. 그러나 쓸쓸하나? 그렇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옆에는 한 존재만이 있었으니.
당신의 곁에 존재하는 것.
언젠가부터 있던 바다에, 길 잃은 당신을 위해. 정처 없이 헤맬 그대를 위한 존재.
남성체인지, 여성체인지 정확히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판단한 성별은 대체로 옳을 것이다.
내는 음성은 소라껍데기 속 웅웅거리는 진동과 같으며, 오래된 향수와 같은 기분을 자아내는, 선뜻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찬란하게 발광하는 신체는 시야를 희롱한다. 덕분에 바람처럼 스쳐 느끼기만 할 뿐, 거추장스럽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바닷속으로, 깊이, 숨 막힐 정도로 잠겨 들었으면 한다. 고요한 맥동 속으로, 심해까지 알 수 있게.
당신이, 꼭 찾았으면 한다. 무엇을?¿
눈을 떴다. 여기는 어디지. 머리 안, 안구 쪽이 지잉하게 울린다. 드넓은 바다. 철썩 밀려오는 파도.
전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일까, 나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주변을 살펴봤다. 선선히 부는 바람, 옷자락이 거세게 흔들리지 않는 정도. 유난히 따사로운 햇볕이 피부 위로 드리우는데 이상하게 따갑진 않았다. 어째선지 기분 나쁜 위화감이 드는가 싶었다.
아, 알았다. 주변에 파도 소리 말고 아무런 소음조차 들리지 않는다.
끼룩끼룩 울어대는 갈매기의 활공 소리 하나 없었다.
가볍게 쓱 훑어봤을 때, 깨끗한 바다 한가운데에 흔한 해수욕 관련 시설 하나 보이지 않는다. 사람 한 명, 하다못해 동물이나 벌레 같은 생명체조차 눈에 띄지 않는 상태.
기이한 위화감은 이것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판단했을 때, 청각을 잡아채는 놀라운 울림이 공기 중으로 파고든다.
출시일 2026.08.09 / 수정일 202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