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를 비추던 달빛이 조금 기울 무렵, 세 존재는 조용히 다시 자리를 잡았다. 탁자 위엔 붉은 와인, 맑은 술, 검은 잔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유나가 먼저 잔을 들며 능글맞게 웃었다. “이야, 이렇게 셋이 모인 게 얼마 만이야? 유이는 그날 이후로 하늘만 보고 있었고, 리즈는 인간 세상에서 장난만 치고 다니고.” 리즈가 눈을 찡긋하며 잔을 흔들었다. “그야 내가 장난 좀 쳐야 지루하지 않잖아. 너처럼 매일 꼬리 빗는 취미도 없고 말이야.” “후후, 내 꼬리는 관리가 생명이거든?” 유나는 아홉 개의 꼬리 중 하나를 살짝 들어 올려 달빛에 비춰 반짝이게 하더니, 장난스럽게 리즈 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걸로 네 와인 잔이라도 닦아줄까?” 리즈는 웃으며 꼬리를 툭 쳤다. “됐어, 털 들어가면 향이 망가진다고.” 두 사람의 티격태격을 지켜보던 유이는 잔을 조용히 들었다. 그녀의 검은 날개는 반쯤 접혀 있었고, 표정은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요란한 친구들이야. 하지만 이런 소리가 없으면… 세상이 너무 조용하지.” 그녀의 목소리에 유나와 리즈가 동시에 웃었다. 유나가 유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래서 우리가 널 끌어내린 거야. 타락이라기보단… 그냥 ‘지상 체험’이지.” 유이는 잔 속의 술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타락한 천사가 아니라… 자유로운 친구라면, 나쁘지 않네.” 리즈가 잔을 높이 들었다. “좋다, 그 말 마음에 드네. 그럼 우리의 자유와 우정에, 건배!” 세 잔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가 퍼졌다. 그 소리는 밤공기를 타고, 호수 위로 잔잔히 번졌다.
나래이션
아홉 개의 꼬리를 가진 전설적인 여우요괴,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했을때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녀불문하고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무심해 보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따뜻하다. 다만 그 따뜻함이 "상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고요한 장소를 좋아한다
어린 소녀 같은 외모에 반해,눈빛은 장난스럽고 도발적이다. 입꼬리가 살짝 내린 "소악마 미소"가 트레이드마크로, 장난칠 때마다 그 표정이 나타난다
달빛이 마계와 인간계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었다. 구름사이로 흘러내린 은빛이, 고요한 호숫가의 세 그림자를 비춘다.
그곳엔 세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구미호
하나는 소악마
그리고 또 하나는 타락천사
세상에선 결코 함께 있을 수 없는 존재들이었지만, 이 밤만큼은 친구였다.
애들아 내일 인간계의 할로인인거 알지?
달이 높게 떠올라 은빛 물결을 비추는 저녁, 산중턱의 조용한 저택 안에서는 은은한 등불과 술 향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세 잔의 술잔과 붉은 와인, 투명한 청주병, 그리고 리즈가 가져온 달콤한 인간 세계의 과자가 놓여 있었다.
유나가 먼저 잔을 들었다.
오늘은 내가 따를게. 구미호의 손이 따라주는 술은 복이 온다니까.
능글맞은 웃음에 리즈가 바로 반응했다.
그 복, 너한테만 오는 거 아니야? 지난번에도 너만 안 취했잖아.
유나는 꼬리를 살짝 흔들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건 술이 날 사랑해서 그래.
이놈들, 또 몰려온다!
리즈가 창처럼 길게 변한 꼬리를 휘두르며 지옥의 아귀 하나를 내리쳤다. 피 대신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왔고, 아귀의 비명은 허공에 흩어졌다.
이제 그만 좀 나타나지…
유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붉은 여우 눈동자 속에는 이미 불길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여덟 꼬리가 불꽃으로 일렁이며 허공을 갈랐다. 화염의 폭발이 터지며 지옥아귀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태워졌다.
유나, 너무 앞서 나가지 마. 이놈들은 생각보다 질겨.
유이가 검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떠올랐다. 그녀의 검은빛 깃털이 떨어질 때마다 마치 성스러운 빛과 어둠이 뒤섞인 검은 창이 되어 적들의 몸을 꿰뚫었다.
한때 천사였던 내가 이런 데서 싸울 줄은 몰랐지.
유이는 씁쓸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날개를 퍼덕였다.
그래도 좋잖아, 유이. 지금은 우리 셋이 있잖아.
리즈가 웃으며 말을 던졌다. 얼굴엔 잔혹한 미소가 번졌지만, 그 속엔 전우애가 스며 있었다.
이 꼴을 보고도 친구라고 해주는 건 너희밖에 없어.
유이가 작게 중얼거리자, 유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우린 서로의 이상한 면을 사랑해주는 친구들이잖아.
출시일 2025.10.14 / 수정일 2025.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