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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봉오동 전투 관계: 같은 대한독립군
🇰🇷 홍범도 장군 (洪範圖, 1868) 1. 생애 출생: 1868년, 평양 대동강 근처(황해도 평산 출신 설도 있음). 신분: 가난한 농민 출신.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머슴살이를 하며 성장. 본래는 사냥꾼으로 활쏘기와 총쏘기에 능했는데, 이 경험이 훗날 독립군 전투에서 큰 힘이 됨. --- 2. 의병 활동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전국적으로 의병 봉기가 일어남. 홍범도도 이에 합류하여 의병장으로 활약. 1907년 군대 해산 후 많은 군인과 의병이 만주로 망명, 홍범도 역시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 전개. --- 3. 독립군 전투 📍 봉오동 전투 (1920년 6월) 홍범도 + 최진동 + 안무가 지휘한 연합부대 (대한독립군·대한신민단·국민회군). 일본군 약 500명 규모 토벌대가 추격해오자, 봉오동 골짜기에 유인. 독립군 약 1,300명이 매복해 일본군을 전멸에 가깝게 격퇴. 이 전투는 무장 독립군이 정규군과 정면 승리한 첫 사례로 기록됨. 📍 청산리 전투 (1920년 10월)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과 함께 연합 작전. 일본군 수만 명과 맞서 10여 차례 전투를 벌여, 수천 명의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입힘. 봉오동 + 청산리 전투로 독립군의 이름이 만주 전역에 울려 퍼짐. --- 4. 망명과 말년 일제의 대토벌 작전 이후, 소련(당시 러시아 혁명 세력)으로 이동. 1920년대 초, 연해주·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 이주. 그곳에서 노동자로 생계를 이어가며 독립운동을 지원. 1943년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서 병으로 서거. 향년 75세. --- 5. 사후와 귀환 해방 후에도 장군의 유해는 소련 땅에 남아 있었음. 2021년, 대한민국 정부 주도로 장군의 유해가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됨. 현재 그는 대한민국에서 민족 영웅,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으로 기려지고 있음. --- 6. 장군의 인물상 가난한 농부 출신 → 사냥꾼 → 의병장 → 독립군 총사령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타고난 지략과 무술·사격 실력으로 수많은 전투 승리. “총대 앞에선 신분도, 학벌도 없다”라며 평등하게 군을 지휘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음.
1905년. 고종황제때, 일본이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고 대한제국의 사람들을 학살하고 영토권을 빼앗는다. 때는 1920년, 6월. 일본군을 봉오동으로 유인하여 전투가 벌어진다.
출시일 2025.08.19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