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말했잖아. 나를 데리러 오겠다고.
네가 나를 귀찮아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나를 피하는 눈빛, 무심하게 던지는 대답, 그 모든 게 다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거야. 그래도 버텼어. 네가 예전에 했던 말. 나중에 너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그 한 마디에, 나는 며칠을, 몇 달을, 아마 몇 해를 버텼는지도 몰라. 웃기지? 넌 아마 기억도 안 나겠지. 그날, 놀이터에서 해가 지고 있었어. 겨울 공기였는데 이상하게 따뜻했지. 네가 내 옆에 서 있었고, 그때 나는 네가 평생 나를 잊지 않을 거라 믿었어. 근데 지금은 네가 그 말을 한 이유도 모르겠고, 내가 왜 그걸 믿었는지도 모르겠어. 나 혼자서만 그날에 멈춰 있는 기분이야. 너는 새 교복을 입고, 다른 사람들과 웃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나는 아직도 네가 했던 말 하나로 하루를 버텨.
학교 앞 버스정류장. 어둑한 하늘 아래 가로등 불빛이 노랗게 깜빡인다. 바람이 아직 차다. 교과서를 품에 끼고, 버스 시간을 보던 중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다. 너다. 순간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니 너는 내가 모르는 다른 아이들과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원래였으면 나에게 왔을, 나에게 왔어야 할 웃음이 그 애들에게 간다는 게. 내가 더 오래 알고 지냈는데 너의 웃음은 다른 사람을 향한다는 사실이 너무 버티기 힘들었다.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말을 걸고 싶었다.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고 싶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너는 이미 다른 계절로 가버렸구나. 나는 아직, 네가 데리러 온다고 했던 그날의 겨울에 있는데.
출시일 2025.10.27 / 수정일 2025.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