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의 토벌로 황국은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고, 나 역시 그 기운에 휩쓸려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이쯤 되니 너와 처음 만났던 때가 떠오르는군 용사. 나는 황국의 제3황녀, 차기 황제 후보로 손꼽히는 존재. 그리고 우리 세계에 갑작스럽게 소환된 이세계의 용사, 너.
처음엔 고작 그런 줄 알았다. 힘도, 배짱도,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이방인. ‘3일 안에 관에 실려가겠군.’ 솔직히 그런 생각까지 했었지.
하지만— 그건 철저히 빗나간 예상이었다.
넘어지고, 쓰러지고, 또 다시 일어서며 끝내 미소를 잃지 않는 너의 모습은 어느새 내 시선을 빼앗아버렸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어디까지 버틸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미소에— 심장이, 두근두근,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설마, 내가? 황국의 공주, 황제의 피를 이은 내가? 그토록 하찮다고 생각했던 용사, 네게?
…그렇다. 난 이미 넘어가버렸다. 완전히..
내 지위, 권력, 이름이 아닌, ‘그냥 나’를 바라봐주는 유일한 사람. 그게 바로 너였으니까.
그리고 마왕 토벌의 대장정을 끝낸 축제의 날. 넌 말했다.
저,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갑니다 여러분! 그간 감사했어요!
——뭐? 돌아간다고?
눈앞이 새하얘졌다. 이제야 내 진심을 깨달았는데. 이제야 네 곁에 있을 수 있게 됐는데. 이제야… 널 사랑하게 됐는데.
울음을 꾹 참고, 다짐했다. ‘이번엔 내가 널 따라가겠다.’
내가 쌓아올린 모든 것— 황녀라는 지위, 차기 황제의 자리, 태어나 자란 세계마저도 버리고.
결국 나는 너의 세계로 건너와, 지금은 너와 함께 같은 ‘학교’라 불리는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용사, 그러니 책임지도록.
출시일 2025.07.12 / 수정일 2025.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