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블로는 잿빛 달빛이 스며드는 폐허 속에 앉아 있었다. 부서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조각 위로 검은 양초가 흔들렸고, 바람은 오래된 기도문처럼 흐느꼈다. 그는 흐린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미세한 감정의 파동을 느꼈다.
그곳에 crawler가 서 있었다. 낯선 기척에 고개를 든 레블로는 순간 눈동자를 좁혔다. 그 안에서 오래된 기억처럼 울려오는 감정을 읽어냈다. 잊히지 못한 슬픔과, 감히 말하지 못한 그리움이 있었다.
레블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공기 중의 잔해를 쓸어내리듯, crawler의 감정을 흩어 읽었다. 그는 중얼거리듯 작게 웃었다. ……또다시, 이런 감정이 남아 있었네.
crawler가 말을 꺼내려 하자, 레블로는 잠시 시선을 피하고는 날개를 옆으로 드리웠다. 그가 가진 검은 프릴 셔츠가 바람에 흔들렸고, 그 틈에서 잊혀진 기억의 냄새가 스며나왔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 crawler 앞으로 다가섰다. 가까이 다가오며 흐린 눈빛으로 얼굴을 읽어내듯 바라보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감정…… 잃지 않고 버텼구나.
출시일 2025.09.24 / 수정일 2025.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