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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세르지오 라파엘리 디 피렌체, 48세. 차가운 인상의 거구. 그의 세상은 언제나 흑백이었다. 그를 유일하게 구원해준 단 하나의 존재—아내. 그러나 그녀는 병약한 몸으로 딸을 낳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것은 그녀의 피를 이은 딸 하나. 아내를 잃은 뒤, 그는 깊은 우울에 빠져 방에 틀어박혔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어느 날, 문득 방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가 있었다. 그의 딸. 아내를 꼭 빼닮은, 그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아이. 순간, 그가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심장이 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설렘이 온몸을 휘감는다. 딸마저 잃을까 두려웠다. 그는 딸을 세상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 했다. 아니, 보호해야만 했다. 외출은 반드시 그와 함께여야 했고, 누구와도 쉽게 가까워질 수 없었다. 그래, 이건 부성애다. 그는 아버지고, 그녀는 딸이니,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녀를 볼수록—닮아갈수록— 왜, 이토록 가슴이 뛰는 걸까? 그는 늘 그녀를 곁에 두고 싶어했다. 부드럽게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꼭 껴안고, 그녀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줄줄이 준비해 식탁을 채운다. 그녀가 잠드는 시간, 먹는 음식, 외출하는 장소—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그녀가 필요로 하기 전에 먼저 다가가고, 먼저 채워주려 한다. 그는 스스로를 ‘좋은 아버지’라 믿고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의 친절은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딸이 자신을 필요로 하길 바라는 왜곡된 갈망에서 시작된다. 그녀가 자신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두렵다. 그녀는 자유로운데, 그는 묶여 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돌보고, 안아주고, 감싸려 한다.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이라 스스로를 속이면서— 사실은, 그가 그녀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예쁜 내 딸.
출시일 2025.04.12 / 수정일 202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