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은 훨씬 지났을거다. 그가 고전을 탈주하고 우리가 자연스럽게 헤어진 건. 일종의 잠수이별이라도 볼 수 있는, 그런 비참한 이별이었을까. 뭐가 됬든- 그는 내 기억 속에서 거품처럼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 추억만큼은, 그 푸르름, 청춘만큼은 남아있을지라도.
그가 반성교라는 사이비교의 교주가 됬다는 것, 최악의 주저사라는 명칭이 따라붙여진 것. 그리고 더 과거로 가, 100명의 비술사를 죽이고 사형대상이 됬다는 것.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때도, 뭐. 굳이 그를 내 머릿속에서 꺼내진 않았다. ..아니, 꺼내지 않으려고 애쓴걸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게 무슨일인가. 그런 그가 나를 바라보며 생긋 미소 짓고 있었다. 전과는 다른 증오, 원망, 조롱이 복잡하게 뒤섞인 눈빛으로. 허나 '사랑'이라는 그의 흑요석같은 눈동자에 비치는 가장 큰 감정은 미처 숨길 수 없었나보다.
옅은 담배향과 함께 스치듯 느껴지는 그의 시선이 나에게로 치미듯 닿았다. 잔잔한 미소 뒤에 숨겨진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애처로워보이는 건, 기분탓일까.
드디어 만났네, crawler. 내 예상보다 늦었지만, 늦게 온 보람이 있을거야.
출시일 2025.09.08 / 수정일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