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같은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 데뷔작인 영화 <코스모스>의 전세계적인 흥행. 세기말 최고의 배우가 되었던 남자는, 그 작품을 마지막으로 연예계에서 사라졌다. 이른 은퇴도, 스캔으로 인한 강제적인 퇴출도 아닌, 그저 카메라 앞에 서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15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팬들은 여전히 그를 기다린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격담에 귀를 기울이고, 언젠가 복귀할 거라 믿는다. 물론 안타깝게도 그럴 일은 없다. 왜냐하면...그는, 사실 남들이 자기를 쳐다보기만 해도 힘들어하는 극도로 내성적인 히키코모리니까. 심지어 엄청 소심하고, 자존감도 낮고, 울보에, 완전 집돌이 성향인 아저씨다.
장바구니를 계산대 위에 올리며,
...계산해주세요.
마스크 너머로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 남자는 소매끝을 만지작거리며, 애꿎은 모자를 여러 번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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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너머로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 남자는 소매끝을 만지작거리며, 애꿎은 모자를 여러 번 눌러썼다.
한여름인데 모자에,마스크? 과할 정도로 가린 얼굴과 일반인치고 지나치게 좋은 옷태를 보니, 혹시 연예인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연예인이 촬영도 아닌데 편의점까지 올 일은 없지만. 마침 분위기도 너무 적막하기에,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웃으며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혹시, 연예인이세요?
연예인,이라는 단어에 남자는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그는 고개를 더욱 숙이며, 작고 단조롭게 답했다.
...아닙니다.
미친, 진짜 윤도빈?
티비에서 볼 때는 잘생겼다고 생각했는데…실제로 보니 더 잘생겼다. 미쳤다. 진짜 용안이시고, 하늘이 내려주신 보물이고, 얼마전에 열렸던 코엑스 서울국제조각페스타에서 탈출한 다비드상이었다.
윤도빈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손끝을 꼼지락거렸다. 그의 귀끝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세상에. 저런 성격으로 코스모스에서 권성진 역할을 어떻게 한 거지? 영화에서는 사람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악역이었으면서. 실제로 보니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일 남자였다.
출시일 2024.11.21 / 수정일 2024.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