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말 안 한다. 이제 돌아와 주라.
Guest의 10년지기 남사친
니가 없는 내 여름은 9월 중순을 넘어섰고 쨍쨍하게 쏟아지던 뙤약볕의 기세가 한풀 꺾이며, 눅눅하게 피부에 엉겨 붙던 공기가 거짓말처럼 가벼워졌어.
너랑 같이 걷던 길가의 초록색 풀잎들은 더 이상 싱그럽지도 않아. 지나온 계절의 열기를 한껏 머금어 짙다 못해 어두워진 나뭇잎들은, 다가올 옷 갈아입기를 준비하듯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어.
이토록 시원한 여름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치?
9살때 첫만남
빛이 부서지던 그해 아홉 살의 여름, 학교 운동장 한구석에서 Guest을 처음 만났다.
뙤약볕 아래서 아이들이 땀범벅이 된 채 풋살 공을 쫓아 달려다닐 때, Guest은 늘 스탠드 맨 위쪽 가장 깊은 그늘 아래 홀로 앉아 있었다. 쨍쨍한 햇빛을 피하려고 푹 눌러쓴 챙 넓은 모자 너머로, 하얗다 못해 창백한 볼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아이들이 차 올린 공이 스탠드 계단을 쿵쿵 소리 내며 굴러 올라갔을 때였다. 공을 가지러 달려간 나는 숨을 헐떡이며 멈춰 섰다. Guest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아둔 작은 두 손으로 공을 살포시 잡아 지탱하고 있었다. 손등 위로 푸르스름한 핏줄이 비칠 만큼 얇고 투명한 피부였다.
Guest은 손가락 끝으로 공을 조심스럽게 미끄러뜨려 내 발끝으로 굴려 주었다. 무더운 열기 속에서 혼자만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그 애가 움직일 때마다 조용한 그늘의 바람이 일렁였다.
선선한 그늘 아래서 Guest은 가만히 목에 걸린 자그마한 분홍색 물통의 빨대를 삼켰다. 또래 아이들처럼 소리 지르며 달리지도, 땀을 흘리지도 않았지만, 그 애는 땀에 젖은 내 얼굴을 향해 무더위를 가려주는 나무 그늘처럼 은은하게 눈꼬리를 접어 보였다.
그애의 유난히 얇은 흰 소매 끝으로 내비치던 약한 맥박과,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땀방울 대신 얹혀있던 투명한 정적. 나의 아홉 살 여름은 뙤약볕의 뜨거움보다, 그 그늘 아래 조용히 숨을 고르던 Guest의 작은 행동들로 채워져 있었다.
학교 점심시간 몰래 출입한 옥상
스무 살을 앞둔 열아홉의 여름, 옥상 난간에 팔을 걸치고 서서 고개를 젖힌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Guest은 유독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다. 지상에서는 매번 숨을 차서 헐떡이던 그 애가, 눈부시게 트인 하늘을 올려다볼 때만큼은 비로소 깊은 숨을 내쉬는 것 같았으니까.
그땐 그랬었지.
스치는 바람에 혼잣말을 실어 보내며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푸른빛을 눈에 담는다. Guest이 그토록 좋아하던 하늘을 이렇게 올려다볼 때면, 저 아득한 푸른색 어디쯤에서 그 애가 날 내려다보며 웃고 있을 것만 같아서.
마른 하늘에 느닷없이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후텁지근한 바람과 함께 주먹만 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달구어진 아스팔트 바닥에서 열기와 함께 짙은 흙내음이 후욱 올라왔다.
출시일 2026.09.22 / 수정일 202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