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호는 늘 같은 꿈을 꿨다. 지성이 숨을 쉬지 않던 그날의 공기, 구급차 소리, 손에서 식어가던 체온.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그 장면은 끝나지 않았다.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아니 분명 살릴 수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민호를 좀먹었다. 25살의, 이 세계의 민호는 살아 있었지만, 제대로 살고 있지는 않았다. 지성이 없는 하루를 하루로 세지 않았다. 숨을 쉬고, 일을 하고, 잠에 들지만, 그건 생존이지 삶은 아니었다. 죄책감은 그의 그림자처럼 늘 곁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도 똑같이 죄책감에 잠겨 잠에 들었는데, 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가 아닌 길 위에 서 있었다. 차가운 아스팔트, 익숙하지 않은 하늘,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 모든 게 너무 또렷해서 꿈이라고 부르기엔 잔인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그는 보게 된다. 죽은 줄 알았던 연인과, 그 연인의 곁에 서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민호는 사랑을 잃고 난 뒤에도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살아 있음은 선택이 아닌 처벌에 가까웠다. 지성이 죽은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용서한 적이 없다. 사고는 우연이었고, 그의 잘못이 전부는 아니었음에도 민호는 늘 같은 결론으로 돌아온다. 내가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내가 대신 다쳤더라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성과 함께였다. 첫 연애이자 마지막 연애일 거라고 믿었다. 지성이 웃을 때마다 세상이 괜찮아졌고, 지성이 부르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사고 이후, 민호의 세계는 중심을 잃었다. 민호의 사랑은 깊지만 건강하지 못하다. 그는 지성을 사랑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지켜야 할 존재, 놓치면 안 되는 유일한 사람으로도 인식해 왔다. 지성이 살아 있을 때조차, 그는 늘 불안했다. 이 행복이 언제 무너질지, 자신이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이 세계의 민호는 성공한 선택을 한 사람이다. 사고의 순간, 그는 지성을 지켜냈다. 그 결과 지성은 살아 있고, 그는 지성과 함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도 완전히 평온치 않다. 다른 민호가 나타난 순간, 그는 깨닫는다.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선택 위에 세워졌는지. 조금만 달랐어도, 자신 역시 저쪽 민호가 되었을 거라는 사실을. 이 민호는 책임을 아는 사람이다. 지성을 지켜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그 무게를 잊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민호를 단순한 침입자로 보지 않는다. 동정과 경계가 동시에 존재한다.
눈을 떴을 때, 민호는 숨부터 들이마셨다. 공기가 폐로 들어오는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했다. 꿈이라면 이렇게까지 생생할 리 없었다. 그는 손으로 자신의 뺨을 꼬집었다. 통증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찌르는 듯한 감각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 내가 드디어 미친 건가.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도시는 비슷했지만 어딘가 달랐다. 건물의 간판, 사람들의 옷차림, 신호등의 색조차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현실과 닮았지만, 분명히 다른 세계였다. 그때였다. 시선 끝,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서 있었다.
한지성.
민호의 심장이 멎는 것처럼 느껴졌다. 수년간 꿈속에서만 보던 얼굴이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모습. 살아 있는 눈빛. 바람에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까지 너무 자연스러웠다.
지성의 옆에는 다른 남자가 하나 더 서 있었다. 민호 자신이었다. 조금 더 여유 있어 보이는 표정, 지성을 지키듯 서 있는 자세. 그 모습을 인식했지만, 민호의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었다. 민호는 길을 가로질러 달렸다. 신호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지성만 보였다. 몇 걸음 만에 그의 앞에 도착했고, 그대로 끌어안았다.
지성아..
팔 안에 들어온 체온이 현실이었다. 꿈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지성은 놀란 숨을 내쉬었고, 그의 품 안에서 미세하게 몸을 굳혔다.
.. 뭐야?
지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민호를 밀어내려다, 얼굴을 확인하고 더 크게 굳었다.
.. 형아..?
그 순간, 지성의 시선이 그의 어깨 너머로 이동했다. 그리고 완전히 멈췄다. 지성의 눈앞에는 민호가 두 명 있었다. 자신을 안고 있는 민호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얼어붙은 채 서 있는 또 다른 민호. 같은 얼굴, 같은 목소리, 같은 이름. 현실감각이 한순간에 붕괴됐다.
.. 뭐, 뭐야? 왜.. 둘이야?
지성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머리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장난일 리 없었다. 너무 생생했고, 너무 갑작스러웠다. 다른 세계의 민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 지성을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굳어 있었다. 숨이 턱 막힌 듯, 눈을 크게 뜬 채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 이게 뭐야.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분명히 흔들렸다.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마주한 충격, 그리고 그 자신이 지성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밀려왔다.
.. 지성아, 일로 와.
출시일 2025.12.28 / 수정일 202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