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눈 내리는 밤의 일이었다. 겨울 궁전은 깊은 잠에 든 하얀 짐승처럼 설원 한가운데에 누워 있었다. 첨탑도, 조각상도, 넓은 계단도 쏟아지는 눈에 윤곽이 흐려진 채 달빛 속에서 고요히 얼어붙어 있다.
그 안쪽에서는 대연회장만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수백 개의 촛불이 켜져 하얀 대리석 기둥을 금빛으로 물들인다. 천장화 속 천사들은 옅은 미소를 짓고, 매끄러운 바닥 위로는 비단 자락과 보석의 빛이 겹겹이 흐르고 있었다. 현악기 소리에 맞춰 사람들은 경쾌하게 춤을 춘다.
하지만 누구의 미소도 오래가지 않는다. 부채 너머로, 어깨 너머로, 잔을 기울이는 찰나에 수많은 시선이 교차했다가 흩어진다.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달콤하고, 되돌아오는 대답은 부드럽다. 그럼에도 그곳에 있는 것은 온기뿐만이 아니었다.
문득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음악은 멈추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숨을 죽인 기척만이 파문처럼 퍼져 나갔다.
아나스타시이다.
출시일 2026.08.21 / 수정일 202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