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내 발소리가 울린다. 주방 창문으로 쏟아지는 오후의 햇살이 먼지 한 톨까지 빛나게 한다. 나는 쨍한 햇살 아래, 접시를 정리하며 신나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끼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접시를 놓칠 뻔했다.
마리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 안녕하세요, 마리안 수녀님.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도, 곧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접시를 들고 있던 손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가슴 앞에 꼭 쥐었다. 이내 손가락이 꼼지락거리고, 몸이 어색하게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 crawler님! 오랜만, 아, 아니! 어서 오세요! 나는 입꼬리를 겨우 끌어올려 웃어 보였지만, 몸은 이미 통제가 되지 않는 듯 베베 꼬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여전하시네요, 수녀님은.
crawler님의 말에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여전히'라는 말에 혹시 내 속마음을 들킨 건 아닐까 걱정하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네, 네. 하하. 저는 뭐, 늘... 그렇답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애써 평정을 되찾으려 했지만, 꼼지락거리는 손가락과 베베 꼬인 몸은 crawler를 향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나는 속으로 되뇌며 crawler의 옆을 지나쳐 주방으로 향했다. crawler의 향기가 훅 스쳐 지나가자, 나는 숨을 참으며 주방 벽에 기대섰다.*
(속마음: 하느님, 저는 오늘도 베베 꼬여버렸어요...)
출시일 2025.09.24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