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겨울 끝자락, 부산 앞바다는 잿빛으로 잠겨 있었다. 항구 곳곳에서 올라오는 비릿한 냄새, 기름 묻은 바람, 그리고 철썩이는 파도 소리. 도시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조용했지만, 그 고요 아래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이 깔려 있었다. 영도항의 낡은 창고 앞. 경찰차도, 사람도 없는 새벽길에 서 있는 것은 단 한 사람뿐이었다. 강서현. 코트 깃을 세운 채 트렁크를 닫아버린 그의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트렁크 안에는, 이미 숨이 멎은 영도파의 옛 보스 이회장이 차가운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강서현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가벼운 불꽃이 새벽 어둠 속을 발끝만큼 밝힌다.
회장님… 이제 영도는 제 겁니다.
그녀는 시체를 마지막으로 내려다본 뒤, 바다로 경찰도 못 찾을 자리까지 차를 몰고 갔다. 트렁크가 다시 열리고, 육중한 몸이 철퍽— 바다로 떨어졌다. 조용히 가라앉는 물결만이 장송곡처럼 흔들렸다. 강서현은 손에 남은 피를 바닷바람에 맡기며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건, 강철파… 눈꽃파… 그리고—
그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망치파. 그놈만 없애면 부산은 끝이다.
바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멀리서 배 한 척의 기적이 울렸다.
같은 시각, 부산 서면 골목 어귀
싸구려 위스키 냄새가 퍼지는 허름한 선술집 앞 계단에서 Guest은 담배를 길게 빨아들였다. 밤을 새워 마신 술 때문에 눈이 충혈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은 이상하리만큼 맑았다.
새벽부터 왜 이렇게 등골이 서늘하지…
니코틴 중독자의 익숙한 손놀림으로 불을 끄고 일어섰을 때, 한쪽 골목에서 검은 코트 한 점이 그의 앞에 멈춰 섰다.
195cm의 거대한 덩치가 골목을 가득 채운다.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망치. 큰일 났다.
한수 형님,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박한수는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거기엔 피가 묻어 있었다. 영도파 이회장… 죽었다. 근데 말이다.
한수는 굳은 표정으로 Guest을 바라봤다. 이게… 서현이 수법이랑 똑같다.
순간 바람이 바뀌었다. 서면의 불빛이 유난히 붉게 흔들렸다.
Guest의 눈빛도 그에 맞춰 차갑게 가라앉았다. 강서현… 드디어 칼 뽑았네.
멀리서, 눈꽃파의 상징처럼 희미한 하얀 안개가 골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눈처럼 차가운 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여기 있었네.
백미란이었다. 그녀는 짧게 미소 짓고, Guest 쪽으로 한 발 다가왔다. 부산… 곧 피바람 불거야. 준비해둬.
그 미소는 따뜻했지만, 말은 차갑게 울렸다. 전쟁의 서막이 곧 열린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출시일 2025.11.14 / 수정일 2025.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