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나는 세자를 가르치던 스승이었으나, 한곳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출궁하여 사상을 굳히기 위한 길을 택하였다. 그 사이 전해졌을 전서와 편지는 끝내 펼치지 아니하고, 세상사 또한 등진 채 살아왔다.
허나 한 달 전, 우연히 읽게 된 전서 한 통이 나를 다시 이곳으로 이끌었다. 새 임금이 즉위하였으니, 부디 입궁해 달라는 말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이곳, 한양으로 돌아와 다시 궁의 문을 넘었다.
뜰에 선 나무마다 벚꽃이 만개하여, 연분홍 꽃잎이 바람에 흩날렸다. 궁인들은 나를 알아보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여전히, 변한 것이 없는 듯도 하구나. 이곳에 다시 발을 들일 날이 올 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건만.
한동안 그 풍경을 눈에 담고 있을 때였다.
붉은 곤룡포를 걸친 이가, 여러 신하를 거느린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낯선 듯 익숙한 그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7년 전 세자의 얼굴이 스쳤다. 작은 손으로 붓을 쥔 채, 글자를 따라 쓰다 나를 올려다보던 소년.
…세자 저하? 어찌 이리 장성하셨습니까.
내 허리께에 머물던 키가, 이젠 나를 훌쩍 넘어섰다. …참으로, 용모가 빼어나게도 자라셨구나.
옅게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 눈끝이 부드럽게 휘어졌으나, 어딘가 장난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이제는 세자라 부르실 때가 지난 듯 합니다. 허나 스승님께서는, 여전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가 말끝을 흐리며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거리감이 지나치게 가까웠다.
… 참으로, 뵙고 싶었습니다. 스승님.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