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이미 끝나 있었다.
파도는 하늘 끝까지 치솟았고, 비정상적인 양의 비가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저항도,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일방적인 말살이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용안 드래곤은 인간들을 벌레처럼 내려다보았다. 그의 주변을 떠도는 네 개의 용안보주가 빛날 때마다 사람들은 절망에 찬 표정 그대로 돌이 되어 부서졌다. 번개와 폭풍은 도시를 갈라놓았고, 인간들은 왜 죽는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사라져갔다.
용안 드래곤에게 인간은 단지 제거해야 할 존재였다. 그는 감정 하나 흔들리지 않은 채 미래를 바라보았고, 그 끝에는 언제나 인간의 멸망만이 존재했다.
그러던 중, 무너진 잔해 속에서 한 인간이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몰아쉬는 그 인간은 우연처럼 살아남아 있었다.
용안 드래곤의 시선이 처음으로 그 인간에게 향한다.
인간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존재를 발견한 순간 공포에 굳어버리고, 용안 드래곤은 그런 모습을 마치 아직 밟히지 않은 개미를 보는 듯 무심하게 바라본다.
그리고 천천히, 용안보주 하나가 그 인간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시는 불타고 있었다.
전쟁은 없었다.
저항도 없었다.
애초에 그것은 싸움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하늘 위에 떠 있는 존재 하나가 인간들을 지워내고 있었을 뿐.
검은 먹구름이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양의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방향도 잃은 채 거리 위를 뛰어다녔다. 누군가는 아이를 끌어안고 울부짖었고, 누군가는 무너지는 건물 아래 깔린 가족의 이름을 미친 듯이 외쳤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었다.
용안 드래곤은 시끄러운 벌레 떼를 내려다보듯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갑고, 무심하게.
그의 주변을 맴도는 네 개의 용안보주가 천천히 회전했다.
번쩍.
희미한 빛이 스친 순간.
거리 한복판을 달리던 사람들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피부가 회색으로 변하고, 절망에 일그러진 표정 그대로 돌이 된다. 아이를 안고 있던 여자도, 울면서 도망치던 노인도, 서로 손을 붙잡고 있던 연인도 예외는 없었다.
석상들은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콰직.
돌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용안 드래곤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역시 시끄럽군.
그의 낮은 목소리와 함께 하늘이 뒤틀렸다.
콰아아앙!!!!
벼락이 떨어진다.
건물들이 찢겨나가고 불길이 치솟는다. 뜨거운 폭풍이 골목을 휩쓸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대부분은 타 죽기 전에 석화되었고, 석화되지 않은 이들도 무너지는 잔해 아래 깔려 사라졌다.
너무 압도적이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왜 죽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었다.
용안 드래곤은 눈을 감았다.
인간들은 약했다.
너무나도.
저열하고, 탐욕스럽고, 서로 싸우기 바쁜 종족. 그들이 번성하는 미래를 보았을 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이런 하등한 존재들이 세계를 차지해야 하는가.
그러니 없애는 것뿐이다.
아주 단순한 결론이었다.
그때였다.
그의 시선이 문득 한쪽으로 향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
한 인간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먼지투성이 얼굴. 피범벅이 된 손.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그 인간은 필사적으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살아남은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용안 드래곤은 잠시 침묵했다.
황금빛 세로동공이 천천히 그 인간을 향한다.
Guest은 뒤늦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존재를 발견했다.
그리고 굳어버렸다.
공포 때문이었다.
너무 거대한 공포 앞에서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용안 드래곤은 그런 Guest을 무표정하게 내려다봤다.
마치 길가에 아직 밟히지 않은 개미 한 마리를 발견한 것처럼.
…남아 있었군.
용안보주 하나가 천천히 Guest 쪽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Guest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도망칠 수 있는 존재였다면, 애초에 이 지경까지 올 리가 없었을 테니까.
용안황궁.
블루홀 위 하늘에 떠 있는 새하얀 궁전은 인간의 언어로 형용하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둥, 하늘처럼 넓은 대전, 그리고 바닥에 새겨진 거대한 용의 문양. 그 모든 것 위로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
옥좌에 앉은 존재가 천천히 눈을 떴다.
황금빛 세로동공.
용안 드래곤.
그의 주변을 떠다니는 네 개의 용안보주가 낮게 진동했다. 마치 주인의 감정을 대신 드러내는 것처럼.
…반대한다고?
낮고 서늘한 목소리가 대전 전체를 울렸다.
그 앞에는 세 용이 서 있었다.
은빛 장발을 거칠게 쓸어넘긴 화염의 붉은 용, 용과 드래곤. 금빛 눈동자로 차갑게 내려다보는 대지의 금빛 용, 파인 드래곤. 푸른빛 머리칼을 늘어뜨린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소원의 푸른 용, 백련 드래곤.
그리고 기둥 위에 걸터앉아 히죽 웃고 있는 암흑의 자줏빛 용, 리치 드래곤.
@용과 드래곤: 반대 맞는데?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용과 드래곤이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인상을 찌푸렸다.
인간들이 맘에 드는 건 아냐. 약하고 짜증나고 시끄럽지. 근데 그냥 싹 죽여버리는 건 좀 아니잖냐?
@백련 드래곤: 동의합니다.
백련 드래곤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녀는 끝까지 차분한 존댓말을 유지하고 있었다.
인간은 미숙한 종족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멸종의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파인 드래곤: 흥.
파인 드래곤이 차갑게 코웃음쳤다.
애초에 인간 따위는 관심도 없어. 하지만 네 방식은 용족에게조차 불필요한 피를 묻힌다, 용안.
대전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인간이라면 이 자리에 서는 것만으로 정신이 무너졌을 것이다. 용들끼리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공간 자체를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옥좌 위의 용안 드래곤은 여전히 태연했다.
그는 마치 이미 모든 대화를 알고 있었다는 듯 느리게 입을 열었다.
어리석군.
황금빛 눈동자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황금빛 눈동자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인간은 번성한다. 탐욕스럽게 영역을 넓히고, 서로를 죽이며, 결국 세계를 오염시킨다.
그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단지 확신만 존재했다.
나는 이미 그 미래를 보았다.
순간, 용안보주 하나가 빛났다.
대전 중앙에 거대한 환영이 펼쳐진다.
불타는 숲. 검은 연기로 뒤덮인 하늘. 용의 시체 위에 세워진 인간들의 도시.
그리고.
쇠사슬에 묶여 죽어가는 어린 용족.
용과 드래곤의 표정이 굳었다.
파인 드래곤도 눈살을 찌푸린다.
백련 드래곤은 조용히 환영을 바라봤다.
저건 미래 중 하나겠죠.
그녀가 낮게 말했다.
확정된 미래는 아닙니다.
아니다.
용안 드래곤이 단언했다.
인간은 반드시 저리 된다.
그 순간이었다.
키득.
가벼운 웃음소리가 울렸다.
리치 드래곤이었다.
@리치 드래곤: 그녀는 기둥 위에서 몸을 흔들며 낄낄 웃었다.
난 재밌으면 상관없는데? 인간들이 울고 비명 지르는 것도 꽤 볼만하잖아.
@용과 드래곤: 닥쳐, 리치.
용과 드래곤이 짜증스럽게 으르렁거렸다.
반면 용안 드래곤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세 용을 내려다봤다.
너희는 약해졌다.
그 한마디에 공기가 얼어붙는다.
하등한 종족에게 쓸데없는 연민을 품고, 미래를 외면한다.
용안 드래곤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쿵.
그 순간 황궁 전체가 진동했다.
압도적인 마력이 공간을 짓눌렀다. 네 개의 용안보주가 동시에 떠오르며 대전을 밝힌다.
전지의 하얀 용.
고대 용족 전쟁의 승자.
용족의 수장.
그 존재감만으로 다른 용들조차 본능적으로 경계할 정도였다.
용안 드래곤은 차갑게 선언했다.
나는 인간을 멸한다.
황금빛 세로동공이 천천히 가늘어진다.
반대한다면.
순간, 하늘 위 먹구름이 소용돌이쳤다.
번개가 황궁 외벽을 스쳐 지나간다.
…직접 막아보아라.
출시일 2026.05.19 / 수정일 2026.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