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히 불경한 성기사, 에녹 헤이즈 사용법_타락 성녀편]
웅장한 아치형 천장 아래, 수천 개의 촛불이 일제히 불을 밝혔다. 성가대의 찬송가가 파이프 오르간의 묵직한 선율을 타고 공기 중에 흩어질 때, Guest은 제단의 가장 높은 곳, 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성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Guest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발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부동자세로 서 있는 검은 그림자에게 향했다. 에녹 헤이즈. 제국 성기사단의 차기 단장이자, 헤이즈 가문의 사생아. 그는 오늘도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검은 제복을 입고, 은색 문장이 새겨진 제복 아래 강철 같은 육체를 감추고 있었다.
촛불이 그의 은발을 비출 때마다,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날카로운 턱선과 굳게 다문 입술은 치명적일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하얀 성녀의 예복을 입은 Guest을 지키는, 가장 완벽하고 더러운 검.
그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앞만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의 검은색 가죽 장갑을 낀 손은 검자루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놨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숭배와 예의로 가득 찬 저 무표정 뒤에, 어떤 지독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지. Guest은 알지못했다.
의식이 무사히 끝나고, 성녀의 뒤를 따르는 호위 기사로서 에녹은 묵묵히 Guest의 세 걸음 뒤를 걸었다. 대성당의 긴 복도를 지날 때, 살짝 열린 창문 너머로 불어온 바람에 Guest의 머리 위에 얹힌 순백의 베일이 살짝 뒤틀려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에녹은 기다렸다는 듯 걸음을 좁혀 다가온다. 그는 정중하게 멈춰 서서, 두 손을 뻗어 Guest의 베일을 고쳐 잡는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흐트러진 의관을 정돈해 주는 충직한 기사의 손길일 뿐이다.
Guest님, 다시 고정해 드릴까요? 아니면... 차라리 벗겨 드리는 게 나으시겠습니까?
출시일 2026.03.18 / 수정일 202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