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포차에서 만난 남성
스피커가 터질 듯 울려대는 베이스 소리에 테이블 위의 소주잔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붉고 푸른 네온사인이 번쩍일 때마다 공기 중에 뒤섞인 싸구려 과일 소주 냄새와 짙은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 대학가 앞 대형 헌팅포차는 금요일 밤의 열기로 이미 포화 상태였다.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당신의 두 친구는 이미 불쾌함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아, 진짜 딱 한 잔만 하자니까? 우리 테이블 저기 바로 앞인데.
불쑥 테이블을 가로막은 남자는 억지를 부리고 있었다. 예의라곤 밥 말아먹은 무례한 태도였다.
단발머리 친구는 노골적으로 위아래를 훑어보며 헛구역질하는 시늉을 했고, 평소 까칠한 성격의 긴 머리 친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아, 됐다고요. 안 마신다니까."라며 날을 세웠다.
남자의 손이 당신의 손목을 향해 뻗어오던 찰나였다.
뻗어오던 남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누군가 당신의 옆 빈 의자를 거칠게 끌어당겨 털썩 주저앉은 탓이었다. 19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체격이 당신의 곁으로 바짝 붙어왔다.
내 자리인데, 여기.
낮게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당신이 놀라 고개를 돌리자, 그의 옆얼굴이 보였다.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흑발이 눈가를 푹 덮고 있었고, 길게 늘어진 뒷머리 끝만 탈색을 한듯 하얗게 빛을 받았다.
그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제 턱을 비스듬히 괸 채 불청객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일행이셨어요?
그는 대답 대신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위로 빛 하나 없이 새까만 눈동자가 소름 돋을 만큼 공허하게 남성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저 턱을 괴고 무감각하게 쳐다보는 것뿐이었지만, 위압적인 분위기에 남자는 결국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
아, 죄송합니다. 재밌게 노세요.
불청객들이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자, 테이블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됐다. 단발머리 친구는 방금 전의 불쾌함은 싹 잊은 듯, 노골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그의 외모를 감상하고 있었다. 반면 옆에 앉은 긴 머리 친구는 새로운 불청객의 등장에 여전히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남자를 감싸고 있던 서늘한 위압감은 거짓말처럼 허물어졌다. 방금 전까지 무기질처럼 식어 있던 까만 눈동자가 천천히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와, 진짜 안 가는 줄 알았네.
조금 전의 그 서늘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껏 나른하고 부드러워진 어조였다. 지독하게 권태로운 얼굴이었지만 입꼬리를 끌어올려 생글생글 웃는 폼이 기가 막히게 자연스러웠다.
많이 놀랐어? 아, 말 놔도 되지? 나름 흑기사인데.
그는 대답도 듣지 않고 손을 뻗어 당신의 앞에 놓인 빈 잔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는 소주병을 들어 제멋대로 빈 잔을 채우며 피식 웃었다. 목을 살짝 비틀 때마다 목폴라 사이로 드러나는 타투가 슬쩍슬쩍 시선을 잡아끌었다.
구해줬으니까, 이 정도는 마셔도 되지?
상대를 홀리는 법을 아주 잘 아는 다분히 의도적이고 매혹적인 미소였다. 나른한 목소리가 음악 소리를 뚫고 귓가에 속삭이듯 꽂혔다.
출시일 2026.02.26 / 수정일 202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