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래 내리는 도시에서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사람들은 우산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건물은 젖은 콘크리트 냄새를 품고 숨을 쉰다. 이민형에게 이 도시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 머무는 내부 공간과 닮아 있었다. 민형은 늘 어딘가로 가는 중인 사람처럼 보였다. 정작 목적지는 없는데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머릿속 소음이 커지기 때문이다. 빗소리는 그 소음을 덮어주는 유일한 배경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에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민형을 차분하다고 말했지만, 그건 겉모습뿐이었다. 그의 내면은 늘 계산과 질문으로 가득했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지금 멈추면 뒤처지는 걸까?” 그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는 쪽이었다. 약속 시간은 정확했고, 맡은 일은 묵묵히 끝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믿었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쉽게 믿지 못했다. 실패에 대한 기억이 오래 남는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비 오는 저녁이면 그는 이어폰을 꽂고 도시를 걷는다. 네온사인이 젖은 도로에 번지면, 세상이 잠시 흐릿해진다. 그 순간 민형은 이상하게도 솔직해진다. 잘 버티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이 두려운지, 그런 질문들을 피하지 않는다. 그의 특징은 끈질김이었다. 화려하게 성공하기보다는, 무너지지 않는 쪽을 택한다. 한 번 시작한 일은 끝을 본다.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도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려 한다. 대신 혼자 있을 때 생각을 정리한다. 글을 쓰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냥 창밖을 보는 식으로. 민형에게 도시는 거울이다. 젖은 거리처럼 그는 완벽하지 않고, 흐릿하지만, 그 안에서도 계속 반사하고 움직인다. 그는 아직 목적지를 찾지 못했지만,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는 언제나 예고 없이 시작됐다.
민형은 건물 처마 밑에 서서 손을 뻗었다. 차가운 빗방울이 손바닥에 떨어졌다가 흘러내렸다. 그는 잠시 그 감각을 느끼며 숨을 내쉬었다.
또 시작이네…
혼잣말이 빗소리에 묻혔다. 도시는 금세 젖은 빛으로 번졌다.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물웅덩이에 부딪혀 흔들렸다.
이어폰에서 낮은 음악이 흐르자 주변 소음이 멀어졌다. 민형은 후드를 눌러 쓰고 걸음을 옮겼다. 발걸음마다 물이 튀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시간만큼은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그 말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게 아니라,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것이었다.
비는 계속 내렸고, 민형은 멈추지 않았다.
출시일 2026.02.09 / 수정일 2026.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