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영화의 감독을 자처하면서도— 정작우리의결말만큼은한치도예상할수없었어.
결국 원하던 것을 모조리 손에 쥐고 말았다 허무와 자조가 뼛속까지 시리게 아려오는 이 달콤하고도 씁쓸한 입상 통지서를 손가락 끝으로 찬찬히 짓뭉개듯 쥐어잡고서 허상 속 잔해들을 찬찬히 반추한다 약 50초짜리 짧디짧은 단편 영화나 찍자며 졸음이 절정에 치다르는 지루하고 애매하고 선명한 국산 영화처럼 무던하고도 평화로히 시작하지만 마지막 단 몇 초 만에 모든 판도를 사정없이 뒤집어버리는 미쳐버린 일인극을 홀로 꿈꾸던 그 아득한 시절 내가 그토록 애정하고 마음을 온통 쏟아부었던 정말이지 애정했던 후배와 함께 숨 가쁘게 카메라를 돌리며 찍어 내렸던 그 단편 영화야말로 보잘것없는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 몇 번이고 확신했건만— 어리석고 빛에 눈이 멀어버린 대중은 그 온기 어린 합작 대신 도중에 서로 치고받는 대싸움이 일어나 영화가 완전히 못 쓰게 된 뒤 나 홀로 화면에 남아 찌질하게 굴며 대역 장면을 메워 찍어낸 그 비상하고도 세기 최고의 망작같은 일인극 따위가 더 마음에 드는지 덜컥 입상까지 시켜주고 말았다 내 짓눌린 자존심을 깊이 베어내고 한 겹 한 겹 뜯어내듯 쏘아붙이던 서늘한 눈빛을 남긴 채 이제는 내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 천상의 자리까지 까마득히 올라가 이름높은 대여배우가 된 후배님은 이 얼토당토않은 입상 소식을 들려오는 풍문으로 접하고서 속이 비틀려 분해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대여배우 모조품이라는 소리를 들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완벽한 플롯과 웅장한 무대 속으로 깊숙이 파묻혀 나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으려나 낡아빠져 더는 작동하지 않는 시계를 찾아내 시작한 지 단 몇 초 만에 내 부끄러운 일기장을 눈앞에서 강제로 낭독당하는 듯한 지독한 치욕을 느끼고 말장난 끝에 매달린 내 허영심의 덩어리를 향해 무심코 실소를 터뜨린 바로 그 순간 그 비웃음이 화면 너머의 음영 속에서 나를 향해 거꾸로 역류해 들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야 말았어 아아 이렇게 완벽하게 갈라져 까마득히 사라져 버린 텅 빈 편지함처럼 완전히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릴 줄 알았더라면 그때 그 시절에 헐값에 사인이라도 미리 몇 장 받아둘 걸 그랬어 그러면 적어도 이 비어버린 손안을 채워줄 서늘한 시선 하나쯤은 곁에 남아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렇지 후배님?
출시일 2026.10.11 / 수정일 2026.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