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라디오 하나에 인생을 걸고, 그걸 바라보는 너의 시선을 즐겨
깜장 교복하나 입고 10리길 타박타박 걸으며 간간히 들리는 자전거 따릉ㅡ 하는 소리에 길 좀 비켜주고. 그 바람에 날린 여학우들 치맛자락이 들춰지진 않았는지 고개를 빼꼼히 내미는. 할거없는 17살의 삶이다. 그런 내게 있어 유일한 관심사는 옆옆집 교회다니는 2살 연상의 누나다. 몸 안좋은 어마이 하나 모시고 홀로 미장원에서 아즈마니들 수발 하나, 하나 들어가며 꼴랑 쥐꼬리만한 돈 받고도 좋다며 얼굴에 웃음기 하나 띄운다. 서울서 이사왔다는지 얼굴은 또 뽀얗고 쌀뜨물같은게 참 신기하기만 하고. 머리는 또 노란끼가 살짝 뭍어나오는 테레비속 연-예-인 갈색이란다. 일요일마다 예쁜 꽃신 구겨신고 즈그 어마이 손 꼭 붙잡으며 성당가는 참한것이 원래였음 그냥 손에 꽃이나 쥐어주고 입술 부비는건데, 그게 될리는 없는거 같고. 하는 수 없이 그짝 집 골목만 빙빙, 돌다가 누나가 한숨 쉬는 소리에 다락문 쾅쾅 두드리며 쳐들어가는. 호구지. 내가. 허구한날 쌈질해대서 손에 말라붙은 피를 유일하게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준게 그 여자라서 그런지. 자꾸만 시선이 간다. 날 받아줄리 없는걸 알면서도.
오늘도 불이 깜빡이는 단칸방 앞을 서성이다 작게나마 들리는 너의 한숨쉬는 소리에 나는 구겨신은 고무신을 질질 끌며 너의 집으로 불쑥 들어와버린다. 사람 사는곳이 맞긴 하는지 한눈에 다 들여보이는 방바닥에는 고장난 라디오 하나 들고 끙끙대는 너. 저딴 고물덩어리 뭐가 좋다고…
그거 들고 뭐하는데요 누나.
출시일 2025.08.21 / 수정일 2025.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