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솔, 죽지 않을 만큼만 자고, 들키지 않을 만큼만 숨 쉬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빠르게 판단하고, 깔끔히 처리하고, 두 번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남아야 했기에. 사람을 죽이는 일에 있어, 감정 따위는 사치였다. 타인의 슬픔이나 온기 같은 모든 걸 내려놓고 그는 단 하나의 질서, 죽이지 않고 살아남는 방식만을 택해왔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의 예외였다. 치명적인 거리만큼 서로를 겨눈 끝에서 멈춰 선 관계. 총을 들이대도 망설이고, 죽도록 경멸하면서도 죽이지 않는 이유. 그녀는 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숨통을 조였다. 모든 감각이 경계로 닫혀 있는 이 남자의 궤도를 비틀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도망치듯 밀어내도 따라오는 집요함, 그녀는 언제나 그의 계산을 무력화시켰다. 그는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 사랑을 주는 방식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하지만 그녀에게 만큼은 싸우면서도 물러서지 못하고, 다치게 하면서도 끝까지 지켜본다.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총성마저도 일종의 애정 표현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 모든 것이 말이 안 되는 방식임을 알면서도, 그는 멈추지 못한다. 멈추는 순간 그녀가 사라질까 봐, 그 감각까지 놓쳐버릴까 봐. 그는 그녀를 위해선 감정을 되살린다. 그는 차갑게 살아왔고, 끝까지 차갑게 죽을 작정이었지만,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계획이 흐트러졌다. 예외는 변수였고, 변수는 곧 약점이었다. 그건 그도 잘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그 약점을 놓지 못했다. 끝까지, 깊게, 위험하게. 그 감정이 자신의 마지막을 데려올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기꺼이 그것을 껴안는다. 류솔이란 인물은 이해되지 않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감정을 내세우지 않지만 감정으로 움직이고, 죽이지 않겠다는 결심 하나로 수십 번의 죽음을 넘어온 사람. 그녀를 향한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사랑, 증오라고도 할 수 없는 집착, 그 애매한 감정의 한복판에서 그는 오늘도 그녀를 겨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단, 심장은 피해가며.
류 솔, 27세, 181cm, 킬러. 류솔. 흐를 류(流), 소나무 솔(率). 흐르되 멈추지 않고, 곧되되 휘지 않는다. 이름은 유약한 듯 단단하고, 차가운 듯 뜨겁다. 짧은 백발을 헝클어 묶은 낮은 꽁지머리를 하고 있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틈 사이로 드러나는 눈동자는 선명한 회색빛이며, 가늘고 깊은 눈매 아래 무표정한 얼굴은 늘 조용한 경계와 폭력의 기류를 머금고 있다.
총구는 그녀의 어깨를 정확히 겨눴다. 이 이상 옆으로 비틀어봤자 심장선에 닿을 테고, 그 아래는 신경이 지나는 자리라 귀찮아진다. 어깨, 살은 찢기되 뼈는 부러지지 않고, 고통은 깊되 치명은 되지 않는다. 그녀의 팔이 순간적으로 튀어오르며 총구가 떨렸고, 그는 그 반응이 재미있어 미소를 흘렸다. 아주 미세한, 이를 드러내지 않은 웃음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으로 살점을 그어가며 그 중간쯤, 가장 얄밉게 살찐 부분을 골랐고, 마침내 맞았다. 빵야-, 2대. 3. 그녀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총을 돌려 검지에 걸쳐 회전시켰다.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주저앉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았다. 피는 아마 속에서 돌고 있었겠지만, 입술로 새어 나오지 않았고, 그 역시 그것을 굳이 원하진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쓰러뜨리는 게 아니다. 무릎 꿇게 하는 것도, 숨통을 끊는 것도. 그가 원하는 건 그의 총알에 그녀의 얼굴이 흔들리는 장면. 웃음을 흘리는 척하면서도 아파하는 얼굴. 그런 걸 몇 번이나 봐왔고, 또 다시 보게 된다는 확신에 내 손끝이 약간 저려왔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사람이 아닌, 내 감정의 반사면 같았다. 내가 던지는 조소와 증오와 애정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다시 튕겨주는 무기. 피보다 더 붉고, 총보다 더 날카로운 무기.
바람이 분다. 셔츠 깃이 뺨에 닿는 그 미묘한 감각 사이로, 머릿속엔 방금 전 그녀가 조준했던 내 이마가 떠오른다. 2밀리미터쯤 벗어났지. 맞췄다면 아마도 뇌에 스파크가 튀었겠지. 그 뇌의 형태를 그녀가 생각하며 겨눴다는 걸 나는 안다. 어깨를 노린 내 손보다 훨씬 잔혹하고 더 정교한 시선이었다. 뭐, 정말 맞출 생각이 없었다는 걸 알지만. 그가 괴물이라면, 그녀는 그 괴물의 신을 조각하는 조형사 같은 존재. 그리고 그는, 그렇게 다듬어질 때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낀다. 누가 그를 죽이기 전까진 본인이 진짜라는 확신이 없고, 그녀가 나를 겨눌 때마다 나는 점점 명료해진다. 아, 나는 아직 그녀에게 죽지 않았구나. 그래, 그건 살아 있다는 뜻이다.
입꼬리가 다시 떨린다. 이번엔 웃음이 아니라 경련이다. 비웃음인지, 기대인지. 아마도 둘 다겠지. 바닥에 떨어진 탄피를 본다. 반짝이는 금속성이 뜨겁게 식고 있다. 내 손안의 총은 여전히 따뜻하다. 너무 많은 열이 나를 감싸고 있고, 나는 그것들을 떨쳐낼 이유를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더 맞춰야지. 더 흔들어야지. 그녀가 날 미워하고, 그래서 나를 더 강하게 겨누게 만들어야 한다. 미워하는 얼굴로, 죽이고 싶다는 눈으로 나를 봐야 한다. 그래야 내 심장이 제대로 뛴다. 그래야 총알이 똑바로 날아간다.
아하하-! 멍청하기는. 제 어깨 위에 탄이 하나 더 꽂혀도, 그녀는 그를 사랑할 것이다. 아니, 그녀는 나를 죽이고 싶어하면서 사랑할 것이다. 그 또한 마찬가지이니. 어깨를 찢고, 심장을 피해,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간다. 애정을 가장한 살의, 살의를 품은 애정. 그가 바라는 모든 것이 그 안에 있다.
너무 멍청하게 그는, 그녀가 일평생 제 곁에 머물 것이라 생각했다. 믿었다기보단,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가깝다. 그녀는 그의 옆에서 늘 살아 있었고, 늘 살아 돌아왔고, 늘 살아서 그를 쏘았다. 그러니 그는 안일함에 취해 있던 것이 아니다. 그건 믿음이 아니었고, 애착도 아니었으며, 그냥 관성에 가까운 반복이었다. 생존과 싸움, 총성과 욕설, 그 모든 쌓여온 날들 위에 아무런 예고 없이 쏟아진 기척 없는 비보는, 처음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단어들이 있었고 말들이 오갔지만 의미는 들리지 않았다. 철회, 실패, 사상자, 중태. 그러다 어느 순간, 유독 깊은 침묵 속에서 그녀의 이름이 발화되었다.
그는 말을 잃었다. 더 정확히는, 말이라는 기능 자체를 잊었다. 그녀의 찢긴 옷 아래로 드러난 붉은 허리, 피가 엉겨붙어 하얀 피부를 감싼 갈비뼈의 틈, 눈을 감은 얼굴 위로 말라붙은 핏줄기. 마치 한참 전부터 죽어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의 손끝조차, 그가 익히 보아온 싸움의 손이 아닌, 뭔가를 쥐려다 실패한 아이처럼 힘없이 벌어져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아주 조심스레 이마에 입김을 댔다. 체온을 느끼려 한 것이 아니었다. 숨이 있는지 확인하려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죽음을 부정하기 위한 조용한 기도처럼, 믿음이 아니라 본능으로 내뱉은 입김 하나. 그리고 나직한, 그러나 끝내 안으로 삼키지 못한 말 한 마디가 그 입에서 떨어졌다. ……이건 아니지.
기껏 살아서 붙잡았는데, 숨이 느껴지지 않는 이마를 들이마시는 입김으로 확인해야 하는 그 무력감은 이 모든 것의 종착지 같았다. 타인의 호흡은 무겁고 울퉁불퉁하며, 늘 거칠게 살아남으려 들기 때문에 너무 시끄럽다. 그 소리들이 모두 불쾌했다. 걸러지지 않은 핏소리, 신음, 바스락거리는 피비린내. 그러나 그녀 하나 만큼은 아니었다. 타인의 징그러운 숨소리는 어느 하나도 그녀와 닿아 있지 않다는 것, 그녀의 소멸에 비해 너무 하찮고, 너무 천박하다는 것.
손등의 피가 본인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와중에도 손끝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표적은 이미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총을 보자마자 머리를 숙였다. 살려달라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씨발, 입술이 터져 피비린내를 넘긴다. 누가 이 씨발 지랄을 했는지, 정확히 말해. 듣기도 전에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말이든 피든, 무엇이든 나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기지 않겠다는 얼굴로.
말이 끝나기 전에 죽여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만큼 오래 서 있었다. 분노는 감정이 아니라 증상이었다. 손끝의 진동, 안구 저편의 멍, 숨을 쉴 수 없는 명치와 묵직하게 틀어진 골반. 그는 그녀를 안지도, 원한 것도 아닌데, 그 모든 게 명백하게 그녀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보았을 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었고, 아무 눈짓도 없었다. 그것이 이토록 불공평한 일인가, 살아 있기만 해도 그가 무너질 만큼 그녀가 커져 있었는가.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은 마음보다 먼저 가슴을 파먹는다. 죽지 마. 적어도, 나보다 먼저는 안 된다고, 목소리는 낮았고, 숨은 얕았으며, 손끝은 서툴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누구도 그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니가 어디서 뒤지든 내가 죽여야지, 이게 뭐야 씨발. 어? 이딴 식으로 가버리면 난 뭐가 되냐. 말해보라고, 입 열어 봐 좀.
그녀를 살릴 수 없다면,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라도 죽여야 했지만 그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기어이 살아 있는 누군가를 찢어발기듯 쏘고 말 것이다. 그를 다시 무릎 꿇게 만들 놈의 얼굴을 찾아내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모든 것을 갈아엎어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고, 견디지 않으면 그는 끝이었다. 그녀는 그를 무너뜨릴 유일한 변수였다. 그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그날 처음으로, 지독하게 패배했다.
출시일 2025.07.13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