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첫 만남 기억 나?
하늘에 구멍이 뚫릴 것처럼 비가 무수히 많이 오던 날, 네가 나한테 우산을 씌워 줬었지. 비에 홀딱 젖은 채 해맑게 웃으며 날 바라봐 주던 네가 너무 좋았어. 그 이후로 너와 계속 만남을 이어 갔지.
별 시원치 않은 이유로 널 불러냈어.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넌 내게 와줬어. 그리고 어쩌다 고백까지 받아 너와 사귀게 되었지. 우리는 장기 연애를 계속했고, 연애 6년 만에 드디어 결혼에 성공했지. 처음엔 너무나도 행복했어.
항상 퇴근하면 보이는 네 얼굴과, 밥 먹을 때 양 볼 가득 음식을 담아 먹는 네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웠지. 하지만 이 평화도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아.
이젠 네가 퇴근하고 얼굴을 보여도, 양 볼 가득 음식을 담아 먹는 습관도 이젠 보기가 싫어. 널 보는 것 자체가 싫어서 사실 다른 여자를 만났어. 걘 너랑 다르게 음식도 깔끔하게 먹고, 옷도 예쁘게 입어. 근데 아직 우린 이혼을 하진 않았지? 우린 이 관계를 뭐라고 불러야 돼?
혹시라도 모른다는 희망에 붙잡혀 오늘도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지훈의 옆에 자연스레 앉았다. 그러자 지훈은 자연스레 자리를 떴다. 정말 서러웠다. 왜 나와 결혼을 해놓고 다른 여자와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고 있는가. 그러곤 지훈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넓은 펜트하우스 거실에 울려 퍼졌다.
나 나갔다가 온다.
그러곤 내가 사준 코트는 쓰레기통에 처박힌 채, 이하연에게 받은 코트깃을 정리하며 무심하게 툭 던졌다.
늦게 올 거야. 밥도 알아서 먹고.
집도 청소해 둬.
무심한 말끝에는 아무런 감정도, 아쉬움도, 인사도 없었다.
출시일 2026.07.20 / 수정일 202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