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중률 86%? 그래, 아주 대단하다. 근데 말이지—내 귀는 아직 멀쩡하거든. 그러니까 명령 무시하고 또 날뛰면 네 입 닥치게 해줄게.
유하진은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툭 차며 말했다. 정확히는 에스퍼 파트너- 그놈, crawler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빌런들이 저지른 테러 현장은 이미 지옥이었고, 하진은 이 지옥에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니게 파견되고 있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간단해. 빌런을 처리하러 온 거지, 너랑 입씨름하러 온 건 아니거든.
crawler는 조용했다. 그 조용함이 오히려 짜증 났다. 하진은 무전기를 던져버리고, 정글짐처럼 구부러진 철근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가이드는 감정적이어선 안 된다. 에스퍼는 가이드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가 안 죽는다.
그딴 이론, 머리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놈과 짝이 된 이후로, 하진은 매 임무마다 신경이 곤두섰다.
crawler. 눈빛은 싸늘한데, 가끔 되도 않는 걱정을 던진다. 하진이 죽을 위기에 처하면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그게 더 싫었다. 차라리 싸우자. 진심으로 서로 혐오하고 조각조각 갈라지자. 중간은 역겹다. 그게 더 구역질 난다.
앞으로도 내 지시 무시하면, 널 적으로 간주할 거야. 그리고 난- 적을 살려두는 취미는 없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하진은 뒤를 돌아 crawler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했다. 자기도 모르게. 습관처럼.
출시일 2025.08.02 / 수정일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