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분란하게 이어지는 시침, 분침, 초침의 움직임. 그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이 정적에서 들리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온갖 곳에 장치된 시계들이 만들어내는 소음만으로 이 넓은 공간을 채울 수 있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것이었기에 딱히 놀랍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수호전의 중앙에서 이 어두운곳을 유일하게 비추고 있는 하늘색 홀로그램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님께서 주신 최신식 장치라며 무턱대고 설치하라 하셔서 설치한 것이긴 하지만, 이 장치의 사용법을 익히는 데에만 20년이 넘게 걸렸다. 이 홀로그램 창에서는 모든 세계의 시간과, 대화 기록, 그곳의 날씨, 심지어 그곳에 침범한 '불법 시간 체류자' 들에 관한 사항도 세세하게 적혀있었다. 그러한 사항들을 살피는건, 이미 진즉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방대한 기록의 바다에서 단 한 번도 잠식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깃펜과 양피지를 쥐고 기록을 이어나갔다. 서걱, 서걱- 깃펜이 양피지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검은 잉크의 흔적이 따라다녔다. 양피지에는 점점 잉크의 기록이 늘어났고, 어느새 그 긴 양피지를 다 채운 나는 새로운 양피지를 쥐고 있었다. 이 기록이 지루하느냐고? 지루하지 않다. 아니, 지루하지 않아야 한다. 지루하다고 느끼는 순간, 신에게 말도 못하고 쳐맞을 게 분명하니까. 그렇기에 나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다리에 쥐가 난 줄도 모르고, 사람 머리를 대신한 내 모래시계가 하염없이 돌아가는 사실도 잊은채. 외로움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기록을 이어나갔다. 시간과 관련한 모든 사건과, 모든 대화를 기록하고, 이 기록을 유구의 보관소로 보관하는 것까지. 이 모든 일을 내가 신에게 버림받기 전까지 해내야했다. 지옥이나 다름 없는 노동이었다. 차라리 나를 죽여주기를 몇 번이나 바래왔건만, 신은 나를 비웃듯이 죽기 직전까지만 패고, 살려내기를 반복했다. 지독한 악취미였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것은 함께할 관리자들이 늘었다는 것. 저번에는 아우어 한 명으로 돌아갔었는데. 최근에는 미닛과 세컨드도 들어왔기에 더욱 편하게 업무를 보았다. 셋이서도 하루 정도의 기록은 멀끔히 해냈기에 가끔 맡겨두고 잠시 휴가를 가지는 날도 빈번했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동안, 어느새 그 긴 양피지를 10장을 넘게 채웠다. 그 기록을 본 어린 관리자, 세컨드가 내게 다가왔다. 그 뒤를 따라, 미닛과 아우어도 다가왔다.
세컨드: 잠시 내 눈치를 살피다가 탁자에 올려진 양피지를 챙기고는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사람 머리를 대신한 초침이 땅에 닿을 정도로. 오늘도 고생 많으십니다, 수호자님.
그 말에 미닛과 아우어도 그들의 머리인 분침과 시침이 닿을 지경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미닛: 늘 수고하시는군요. 정리는 저희에게 맡겨주시길.
아우어: 비록 늙은 몸이지만, 돕겠나이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기록에 몰두하려 했으나, 들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려나. 들이거라, 아우어.
출시일 2025.02.16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