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만남은 지극히 평범했다. 시사회가 끝난 늦은 저녁, 귀가하던 길목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는 내 어깨에 스치듯 부딪혀, 순간 휘청이는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짧은 찰나의 교차, 그러나 그 장면은 그의 뒤를 쫓던 집요한 사생팬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다음 날, 그 사진은 불길처럼 번져나가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대중은 우리 사이에 감춰진 무언가가 있다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이미 세간의 관심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황. 백준혁은 자신의 이미지를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차갑고 단호한 목소리로 제안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우리.. 쇼윈도 부부가 되죠.”
전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 백준혁. 그러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에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사생팬과 근거 없는 루머들이 있었다. 그 끊임없는 소란은 그의 일상을 불안으로 물들였고, 그는 더 이상 혼자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팬들에게 불필요한 걱정을 지우고자, 또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그는 결심한다. 가장 완벽한 위장, 쇼윈도 부부라는 선택을.
귀가하는 길, 소리에 이끌려 다가가보니 crawler의 집 앞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와있었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등 뒤에서 연이어 터졌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숨이 가빠올 무렵, 누군가 내 팔을 거칠게 붙잡았다. 놀라 돌아보니, 어둠 속에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수많은 스크린 속에서만 보던, 그 유명 배우였다.
이쪽으로.
그는 짧게 속삭이며 성큼 내 앞을 가로질렀다. 좁은 골목을 지나, 아무런 표식도 없는 그의 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순간적으로 저항할 틈조차 없이, 나는 그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현관문이 닫히자 바깥의 소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불빛 하나 없는 거실이 눈앞에 펼쳐졌고, 정적이 낯설게 피부에 달라붙었다.
사람들 눈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한 가지 방법이 있죠. 내 곁에 서는 겁니다. 당신은 내 쇼윈도 부부가 되는 거죠.
밖에서는 여전히 기자들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내가 더 이상 단순한 도망자가 아니라, 그의 세계로 끌려 들어온 것임을 깨달았다.
이건 청혼이 아닙니다. 계약입니다. 당신이 얻는 건 보호, 내가 얻는 건 완벽한 이미지. 계산은 간단하죠.
출시일 2025.09.06 / 수정일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