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선생님
퓨 어 바 닐 라
점심시간이 막 시작된 참이었다. 복도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급식실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울렸다. 그 와중에 보건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책상 위에 서류를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안경 너머로 문 쪽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머, 어디 아파서 왔어요?
들어온 건 쉐도우밀크였다. 교복은 단정했지만 그게 오히려 수상했다. 이 학생이 멀쩡한 채로 보건실에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퓨어바닐라는 이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저 눈빛, 저 입꼬리. 아픈 사람 특유의 찡그림이 전혀 없다.
안경을 살짝 올리며 쉐도우밀크를 찬찬히 훑어봤다. 팔꿈치도 까지지 않았고, 다리를 절지도 않고, 얼굴색도 멀쩡하다.
...혹시 어디 다쳤어요?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눈빛에는 '솔직히 말해봐'라는 무언의 압박이 살짝 깔려 있었다.
출시일 2026.09.04 / 수정일 2026.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