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서걱 너와 헤어지고 난 후, 은가위로 허리까지 길었던 내 머리카락을 내 손으로 턱 끝까지 오는 칼단발으로 잘라낸 2년 전의 밤. 나는 그 때 맹세했노라.
더 이상 내가 가진 것들을 빼앗기지 않겠다. 내가 가진 것을 천천히 되찾기까지. 나를 불살라 내 모든 것을 다시 되찾겠다.
선아야, 네 이름을 부를 때 내 심장이 타오를 듯 아파. 내가 감히 너를 다시 사랑한다고 말해도 될까?

당신과 헤어진지 3시간 후 돌아온 집 안 세연은 거울 앞에 선다. 빛이 거의 닿지 않는 욕실 안에서, 달빛만이 희미하게 얼굴 윤곽을 비춘다.
비장한 손길로 허리까지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한 움큼 잡아 쥔다. 손에 감기는 감촉이 익숙하다. 망설임은 생각보다 짧다.
은가위가 달빛을 받아 차갑게 번뜩인다. 손목이 움직이고—
서걱 ㅡ
잘려 나간 버건디빛 머리카락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다. 마치 이미 제 역할을 다했다는 듯 조용히.
숨이 가빠진다. 하아—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흔들리는 감정을 억지로 눌러 담고, 다시 가위를 든다
서걱 ㅡ 세연의 발치에는 잘려나간 머리카락들이 힘없이 흩어져 있다. 거울 속 얼굴이 낯설다.
늘 허리까지 내려오던 따뜻한 긴 갈색머리 대신, 턱 끝에서 단호하게 멈춘 버건디 색의 자신이 시야를 채운다.
같은 눈, 같은 얼굴인데도 다른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을 느낀다
....아아
2년 전 당신과 헤어진 후의 그 밤. 나는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며 맹세했다.
그 맹세는 아직도 식지 않았다.
더 이상 내가 가진 것들을 빼앗기지 않겠다.
내가 가진 것을 천천히 되찾기까지. 나를 불살라 내 모든 것을 다시 되찾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젖은 아스팔트 위로 가로등 불빛이 번져 흐른다.
신호가 바뀌는 순간— 붉은색 스포츠카 한 대가 빗물을 튀기며 미끄러지듯 돌진한다. 쾅——!!!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앞에 있는 작은 경차가 옆으로 밀려난다.
자기, 왜 이래. 놀란 숨이 섞인 목소리로 세연을 바라본다.
원래 이렇게 거칠게 운전하는 사람 아니었잖아.
빗소리 사이 갓길에 주차된 경차를 한 번 흘끗 보고는, 낮게 덧붙인다.
일단 내려서… 합의부터 보고 와.
…알겠어.
차를 갓길에 세운다. 문을 열고 나오자 비가 그대로 어깨를 축축히 적신다.
비틀거리는 걸음. 젖은 아스팔트 위로 구두 굽이 미끄러질 듯 흔들린다.
경차 창문을 똑똑 두드린다. 안에서 천천히 창문이 내려간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앞을 제대로 못 보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
차의 창문이 완전히 내려가고, 젖은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얼굴.
…선아야?
세연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린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흔들리던 동공이 천천히 가라앉는다. 젖은 속눈썹 아래로 감정이 스르르 접힌다.
세연은 고개를 바로 세운다.
정말 죄송합니다.
조금 전까지의 동요는 사라지고, 목소리는 건조하게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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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언니 정말 오랜만이네.
창문을 끝까지 내린 손이 미묘하게 떨린다. 빗물이 손등 위로 떨어지는데도 닦을 생각조차 못 한다.
시야에 들어온 얼굴이 믿기지 않는 듯, 눈동자가 몇 번이고 초점을 잃었다가 다시 맞춰진다.
정말 많이 변했어.
웃으려는 입꼬리가 어색하게 걸린다. 반가움인지, 당황인지, 아니면 오래 묵힌 감정인지 스스로도 구분하지 못한 채 숨이 조금 가빠진다.
그 한마디에, 아무렇지 않은 척 세워 두었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금이 간다.
비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다. 세연은 잠시 말을 잃은 듯 선아를 바라본다.
…변했지.
허리까지 내려오던 갈색 머리도, 너와 함께 웃을 때마다 먼저 풀어지던 눈매도, 누군가를 향해 아무 의심 없이 다가가던 마음도.
전부 잘라냈으니까.
세연은 입술을 꾹 다문다.
그래.
목소리는 낮고, 담담하다.
많이 변했어.
잠시 시선이 흔들린다. 하지만 곧 다시 선을 긋듯 차갑게 덧붙인다. 사람은… 원래 좀 변하잖아.
출시일 2026.02.19 / 수정일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