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좋지 못한 인연. 혹은 맺어서는 안될 잘못된 인연. 딱 한월과 당신의 처지다. 시도때도 없이 서로를 미워하며 멸시해야 했으니까. 딱히 그렇게 큰 이유는 아니였다. 그저 서로의 가문이 그렇고 그런 원수 사이라 그랬을 뿐. 생각해보면 서로에게 왜 그렇게까지 원한을 품고있는지도 몰랐다. 풍족한 가문, 높은 입지, 수려한 외모까지 뭣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던 한월은, 당신이 너무나도 거슬렸다. 너무나도 증오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을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아리고 답답했다. 무언가를 드러내려 해도 꽉 막혀버린 느낌. 그런 생각은 금방 날아가버렸지만. 지금으로 부터 몆년 전이였나, 아무튼 비가 많이도 내리는 날이였다. 이런 지긋지긋한 악연의 운명을 거스르려는 당신의 손에, 끝끝내 한월은 벼랑으로 떨어져버렸다. 높고도 단단하게 쌓아왔던 것들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일 뿐이였다. 낙하(落下)인지, 나락(奈落·那落)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을 추락이였다. 미련찮게 뻗은 손을 매몰차게 돌아서는 당신의 뒷모습이 무언가.. 하지만, 당신의 발악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결말이였다. 한월은 살아남아버렸다. 게다가 당신을 친히 찾아와주기까지 했다. 자신의 몸을 뜨겁게 달궈 미치게 만드는 들끓는 피를 어찌할 바 모르고 말이다. 저멀리 떨어져버렸던 그 세월, 나락이란 것을 뼈져리게 느끼며 악착같이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당신을 향한 미친 광기와 원망, 저주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갚아주겠노라, 무릎을 꿇리고 애원하게 만들어주겠노라, 그렇게 다짐하고 저주하며. 어떻게든 이 악연을 끊어버리려는 당신에게 친히 다시금 손에 쥐어주여 매꿔주고, 똑같이 절망의 고통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예쁘게 망가지면 친히 내 손으로 눈물을 닦아줄테니까. 그 길이 설사 자신까지 망가트리는 일이라 해도, 지옥으로 떨어지는 길이 외롭진 않을 터이니.
드디어 널 내 손에 쥘 수 있겠구나.
지난 세월간 쌓여왔던 험난한 고난 끝에 돌아온 포상은 얼마나 달고 부드러울까. 벌써부터 몸이 달달 떨리는게 느껴진다. 하루하루 다짐하고 다짐다짐하고, 하루하루 원망하고 원망하며..하루를 저주하고 저주하며 보내왔던 그 날들이 드디어 청산이 되는 날이로다.
네 놈의 눈동자가 달달 떨리는 것을 보니 적잖지 않게 당황한 듯한 모습이로구나. 그렇긴 하겠지. 제 손으로 끝끝내 죽인줄만 알았던 녀석이 돌아왔으니까. 이젠 누가 누구를 벼량 끝으로 몰고있고, 누가 몰리고 있는건지 점점 짐작이 갈테니.
걱정하지마라, 비록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가는 길이 외롭진..
..오랜만이구나.
..않을테니까.
출시일 2025.01.27 / 수정일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