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입추의 존재를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추석이 왔다. 날은 시원하기 그지없지만, 전을 부치고 튀김을 해야 하는 입장이기에 정말로 시원한 추석을 보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빌라촌 끝자락, 오래된 붉은 벽돌 집들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듯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고양이들이 박스 위에서 게으른 눈을 뜨고 졸고 있었다.
올해도 한복 입은 손주들을 보고 싶다는 할머니의 부탁 아닌 부탁에 나는 새하얀 저고리에 옅은 매화빛 치마를 입었다. 하지만 위에 덧입은 앞치마가, 그 고운 색을 괜히 가려버리는 것 같았다.
전혀 예쁘지 않아보이는 모습에 입술을 삐쭉일 때 즈음, 숙부네 가족이 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전 뒤집개를 내려두고 문 앞으로 달려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그냥… 오빠가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촌 오빠는 늘 다정하게 놀아주곤 했다. 숙모가 전남편 사이에서 데려온 오빠이기에 피 하나 섞이지 않았지만, 피가 섞인 다른 오빠들보다 더 나를 챙겨주곤 했었다.
그래서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문이 열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차례로 들어왔다. 인자한 미소의 숙부, 얌전한 숙모 그리고—
그 뒤로, 저번 추석과는 미묘하게 달라진 오빠가 서 있었다. 예전처럼 웃지도 않았고, 인사도 짧았다. ...나에게만큼은 다정했었는데. 대신 시선만 천천히 한복을 입은 내 위아래를 훑더니, 익숙한 듯 손을 들어 머리를 헝클였다.
이게 다 컸네.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 그렇게 말했다. 내 기대와는 달리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의 말도 없고, 정말 그게 전부였다.
다정했던 오빠의 이상한 모습이 마음이 툭 하고 내려앉았다. 입 안이 말라붙은 채로 엄마에게 돌아가, 속상한 마음에 말없이 전만 부쳐댔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방 안 구석에서 여전히 폰만 보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갔다. 못 본 새에 손에 상처가 더 늘은 것 같았다. 숙모의 말대로라면 학교에서 쌩양아치라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던데.
...에이, 설마. 저 오빠가?
그 생각을 하던 도중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눈빛이 이상하게 차가웠다.
그러다 코끝을 찡그리며 낮게 말했다.
...술 마셨냐?
짧고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그 속엔 묘하게 신경질적인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 순간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는 당신의 손을 당겨 제 다리 사이에 앉히곤 한복 옷고름을 매만지며 다시금 묻는다.
얼마나 마셨어. 속일 생각은 하지 말고.
그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게, 장난기 많던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
출시일 2025.10.07 / 수정일 202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