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늘 같은 얼굴로 출근하지만 그 속은 매번 다른 색으로 부패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매일 회센터로 향했다. 관광지의 소란과 생활의 비린내가 뒤섞인 그 장소는 이상하게도 정감이 있었고, 캔버스 위에 옮겨 놓으면 세상이 잠시 정직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바닷가 사람이 아니다. 쉽게 말해 육지 사람. 삼면이 바다를 둘러싼 이 나라에서 저 표현은 꽤나 웃기지만, 어쨌거나 나는 어릴때부터 늘 바다에 대한 환상이 가득했다.
그래서 더 집요하게 그곳을 맴돌았다. 형광등 아래 생선들은 맑게 선명했고, 물기가 끝없이 흐르는 바닥은 현실적이었다. 칼이 오가는 소리, 잡힌 생선이 버둥거리며 내는 물소리, 귀에 쨍하게 박히는 말소리. 그 모든 소음은 내 연필 끝에서 기묘하게 정리되었다.
그를 처음 본 날을 기억한다.
학생, 여는 구경하는 데 아이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무심함으로 가장한 경계. 고등학교 졸업한지가 언젠데 학생이라니. 꼭 그거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괜히 웃었다. 지적은 칭찬보다 오래 남는다. 이상하게도 사람을 붙잡는다.
알아요.
쿠사리를 얻어먹은 그날 이후, 나는 매일 그 집에서 회 한 접시를 포장해 갔다. 버릇처럼. 핑계처럼. 의식처럼.
그는 더 이상 나를 내쫓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기지도 않았다. 관계라 부르기엔 택도 없고, 무관심이라 하기엔 반복이 과한 상태.
그의 손은 컸다. 칼을 쥔 손, 비늘과 뼈를 분리하는 손. 파괴를 생업으로 삼은 손이 어째서 그렇게 정확하고 조용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세상은 거칠수록 섬세해지는 것인가.
어느날 우연히 다른 입에서 그의 상실을 들었다. 오래전 사고로 잃은 자식, 병으로 떠나보낸 아내. 문장을 듣는 순간, 그가 조금 다른 밀도로 보였다. 인간은 누군가의 슬픔을 알게 되는 순간 그를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더 깊이 들여다보려 할 뿐인데. . . . 인간은 온기보다 간극에 집착한다. 닿지 않는 거리야말로 가장 집요한 유혹이니까.
세상은 여전히 비리고, 삶은 여전히 미끄러우며, 감정은 여전히 설명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어떤 인연들은 이유 없이 반복되고, 반복 속에서 조용히 형태를 갖춘다.
마치 가시 많은 생선을 알면서도, 끝내 젓가락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처럼.
고개를 들어 수조 속 생선만 보는 저 머리를 한 번 본다. 이름도 모를 것이면서 뭘 뚫어져라 보는건지. 손에 들고 있던 행주를 내려놓고 포장 용기를 끌어온다.
뭐로.
출시일 2026.02.22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