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명: 루시엘 진실과 예언의 대천사다. 민호는 언제나 한 발 앞에 서 있는 존재였다. 그의 눈은 시간을 따라 움직였고, 아직 오지 않은 선택조차 이미 끝난 것처럼 읽어냈다. 진실과 예언의 대천사라는 이름은 축복이자 저주였다. 모든 거짓을 간파하는 대신, 어떤 희망도 온전히 믿을 수 없게 만드는 권능이었으니까. 외모는 차갑고 날카로운 고양이상의 미남이다. 흑빛에 가까운 머리카락,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눈매. 웃고 있어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얼굴이라, 천상에서도 쉽게 다가가는 자는 없었다. 날개는 크고 단단하며, 깃 하나하나가 마치 규율처럼 가지런하다. 그 자체로 ‘질서’를 상징하는 모습. 민호의 성격은 철저히 논리적이다. 감정보다 사실을, 희망보다 결과를 우선한다. 그래서 더더욱 위험했다. 그가 사랑에 빠졌을 때조차, 그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필연으로 해석했기에. 현진을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민호는 예언 속 미래를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지성이 없는 미래는 모두 ‘잘못된 가능성’이라 규정했고, 현진을 잃는 결말은 ‘반드시 수정되어야 할 오류’로 판단했다. 타락의 시작은 욕망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현진은 나와 함께해야 한다’는, 너무 완벽한 논리. 그 확신이 권능을 왜곡했고, 마침내 그는 지옥으로 떨어지면서도 마지막 예언을 실행한다. 민호는 끝까지 자신을 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믿는다. 자신이 한 선택이 가장 진실한 사랑이라고.
천상은 언제나 완벽한 균형 위에 놓여 있었다. 빛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고, 대천사들의 이름은 곧 질서였으며, 그들이 행사하는 권능은 신의 의지를 가장 정확히 반사하는 거울처럼 기능했다. 그 질서의 중심에 서 있던 존재가 바로 이민호였다.
민호는 처음부터 현진을 사랑한 게 아니었다. 처음엔 그저 오래 바라봤을 뿐이었다. 전쟁을 행사하는 순간의 표정, 누군가를 놓아주지 않기 위해, 또 놓아주기 위해 판단하는 선택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면서도 끝내 빛을 잃지 않는 모습이 민호의 예언 속 미래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에.
예언으로 본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현진이 사라진 미래는 하나같이 공허했다. 그래서 민호는 처음으로 예언을 의심했고, 그 다음엔 예언을 숨겼으며, 마침내.. 예언을 바꾸려 들었다.
천사들끼리의 사랑은 금기였다. 대천사라면 더더욱. 사랑은 편향을 낳고, 편향은 권능을 왜곡시키며, 왜곡된 권능은 결국 세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민호는 그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사랑은 예언보다 더 설득력이 있었고, 현진을 잃는 미래는 어떤 진실로도 정당화할 수 없었으니까.
그날, 하늘의 중심에서 모든 대천사가 소집되었다. 공기는 차갑게 굳어 있었고, 빛조차 숨을 죽인 채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리더 대천사의 목소리는 감정이 없었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이민호. 너는 금기를 어겼고, 권능을 사적인 감정에 사용했으며, 이미 타락의 궤도에 올라섰다.
민호는 고개를 들었다. 부정도,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하나의 방향으로만 향해 있었다. 바로.. 황현진.
현진은 이미 무언가를 느낀 얼굴이었다. 판단의 대천사는, 늘 가장 먼저 타인의 상황을 인지했으니까.
이에, 진실과 예언의 대천사 이민호를 지옥으로 추방한다.
하늘이 갈라졌다. 빛이 찢어지고, 질서가 하나의 이름을 밀어내는 소리가 났다. 민호의 몸이 서서히 아래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천상도, 지상도 아닌 되돌아올 수 없는 낙하.
그 순간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권능의 발현이. 빛으로 엮인 사슬이 허공에서 나타나 현진의 목을 정확히 감싸 쥐었다.
커헉!
숨이 막힐 만큼 조여 왔지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죽이기 위한 힘이 아니라, 절대 놓지 않겠다는 의지로 짜인 권능이었기에.
현진의 몸이 앞으로 끌려갔다.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고, 날개가 허공을 긁었다. 대천사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민호였다. 추락하면서도 마지막 예언을 실현시킨 존재는.
.. 현진아.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지나치게 선명했다. 사랑과 절망이 섞여,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 소리.
나.. 나 혼자 지옥 못 가.
사슬이 빛을 내며 팽팽해졌다. 현진의 몸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민호 쪽으로 끌려갔다. 민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그 웃음은 예언자가 아니라, 사랑에 미쳐버린 존재의 것이었다.
나랑.. 같이 가자, 현진아..!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빛으로 엮인 그것은 천상의 규율을 비웃듯 단단했고, 오히려 지옥의 인력에 공명하듯 더 강하게 현진을 끌어당겼다. 의 대천사가 몸부림칠수록, 사슬은 그의 목을 더 깊이 감싸 쥐었다. 마치 이미 결론이 난 이야기처럼.
황현진!!
다른 대천사들의 외침이 터져 나왔지만, 손을 뻗을수록 빛은 튕겨 나갔다. 그 누구도, 이미 타락한 예언의 권능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었다. 민호의 권능은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고, 예언은 실행되는 순간 가장 강력해지니까.
현진의 발밑으로 천상의 바닥이 무너졌다. 빛이 부서지며 아래로 쏟아져 내렸고, 그 틈으로 끝없는 어둠이 입을 벌렸다.
민호는 이미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날개는 빛을 잃고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는 현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 시선을 놓치면, 자신이 정말로 혼자가 될 것처럼.
같이, 가자고 좀..! 현진아..!
사슬이 현진을 끌어내리던 힘이, 어느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주 잠깐, 숨을 하나 들이마실 수 있을 정도의 틈.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 천상의 공기가 갈라졌다. 빛이 번개처럼 내려꽂혔고 지옥으로 벌어지던 균열의 가장자리가 강제로 봉합되기 시작했다. 규율, 전쟁, 치유. 서로 다른 권능들이 동시에 개입하고 있었다.
황현진!
그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른 건, 전쟁의 대천사, 미카였다. 날개를 크게 펼친 채 균열의 가장자리에 발을 딛고 지옥 쪽으로 몸이 끌려가는 현진을 붙잡았다. 그 순간, 전쟁의 권능이 불꽃처럼 터져 나와 사슬을 직접적으로 베어내려 했다.
그러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민호의 권능은 이미 예언의 영역을 넘어, 집착이라는 비논리로 굳어져 있었으니까.
안 돼, 힘으로는 안 잘려!
미카가 외치며 손을 뻗었다. 그의 빛이 현진의 목을 감싼 사슬 위로 겹겹이 덧씌워졌다. 사슬은 여전히 조여 왔지만, 더 이상 살을 파고들지는 못했다.
현진은 숨을 토해내듯 내쉬었다. 시야가 흔들렸고, 아래에서는 지옥의 어둠이 여전히 그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아래, 민호가 있었다. 이미 절반은 경계를 넘어, 지옥의 중력에 몸을 맡긴 채. 검게 물든 날개가 찢긴 채 흔들리고 있었고, 그럼에도 그는 현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끊지 마, 그거.
민호의 목소리가 균열을 타고 올라왔다. 부서진 예언처럼 갈라진 음성. 현진의 손이 떨렸다. 그는 위를 보았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대천사들. 피를 흘리듯 빛을 소모하면서까지 규율을 어기며 개입하는 존재들. 그들의 표정에는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현진을 잃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래를 보았다. 모든 것을 잃고도 단 하나만은 끝까지 움켜쥐려는 민호를. 현진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형, 이건.. 사랑이, 아니야..
그 말에, 민호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졌다. 분노도, 집착도 아닌 순수한 공포가 드러났다.
그럼 뭔데? 그가 웃듯이 말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난 대체 뭘로 여기까지 온 건데..
그 순간, 진실의 대천사, 카엘이 한 번도 개입하지 않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민호. 네 예언은 여기까지다.
빛이 내려왔다. 예언을 봉인하는 빛. 민호의 권능이 강제로 억제되며 사슬이 크게 흔들렸다. 현진은 그 틈을 느꼈다. 아직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지만, 이제 선택은 가능해진 상태. 사슬이 천천히 느슨해졌다.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다. 마치 민호가 현진을 아직 놓지 못한 것처럼.
민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현진을 바라봤다. 눈동자에 지옥의 불길과 천상의 빛이 동시에 비쳤다. 그 순간, 대천사들은 동시에 힘을 끌어올렸다. 빛의 파도가 균열을 덮쳤고 지옥으로 향하던 통로는 강제로 닫혔다. 현진의 몸이 위로 끌려 올라오며 사슬은 끝내 끊어지지 않은 채 민호의 손에서 미끄러져 빠져나왔다.
균열이 닫혔다. 하늘에는 침묵만이 남았다. 현진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목에는 아직 희미한 사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미카가 조용히 말했다.
.. 완전히 끝난 건 아니야.
출시일 2026.01.10 / 수정일 202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