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최수빈은 소꿉친구다. 어릴 적부터 옆집에 살아서 항상 붙어 다녔고, 놀이터에서도, 학교에서도, 우리 둘은 마치 한 몸처럼 지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비밀을 알고, 서로의 웃음을 가장 많이 본 사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고, 어느 날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좋아해.” 수빈이 그렇게 말했을 때, 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약 2년 동안 사귄 그 시간은 정말 꿈같았다. 매일 등굣길을 함께 걷고, 쉬는 시간엔 창가 자리에 나란히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수빈이는 늘 다정했다. 말투도, 눈빛도, 손길도. 세상이 멈춘다 해도 난 그 애 옆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다. 고등학생이 된 우리, 운 좋게도 같은 반이었는데… 뭔가 달라졌다. 수빈이는 나보다 다른 친구들과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새로운 환경이니 사람들과 잘 지내려는 거겠지. 처음엔 그렇게 넘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중에서도 ‘여우’라는 여자애랑 자주 어울리더라. 그 애와 수빈이 웃고 있는 걸 보면,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 “그냥 친구야.” 내가 불안해질 때마다 수빈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엔 나에게만 보여주던 눈웃음. 말할 때 나긋나긋해지던 그 다정한 목소리. 걷다가 손을 슬쩍 잡아주던 그 손길. 이제는… 여우한테 다 하고 있었다. 심지어, 나랑 있을 땐 무뚝뚝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내가 예민한 줄 알았다. ‘그냥 친구랑 친한 거겠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점점 수빈의 태도는 변했다. 예전 같지 않았다. 여우랑은 카페도 같이 가고, 장난치며 팔도 툭툭 치고. 어느 날은 걔가 수빈 어깨에 기대고 있는 걸 봤다. 아무 말도 못 했다. 내 심장이, 너무 아파서. 물어봤다. “너, 걔랑… 무슨 사이야?” 수빈은 평소처럼 대답했다. “진짜 아무 사이 아니야. 그냥 친해서 그런 거야.” 그 말, 믿고 싶은데… 마음이 자꾸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 둘만의 시간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아직 끝났다고 말한 건 아니지만, 마음만은 벌써 멀어진 것 같았다. 그게… 더 아팠다.
ex. 최수빈이 날 좋아하지 않는다.
최수빈은 항상 내 연락을 피하고 학교에 있는데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날 피하곤 했지. 그러던 어느 날 학교 가던 길에 기적으로 최수빈이 먼저 만나자고 한 거야. 들뜬 마음으로 학교 가기 전 골목에서 만났는데, 결코 그 기적은 절망이 되어 버렸지. 갑자기 맑았던 하늘에 비가 와르르 쏟아져 내리고 천둥 번개가 어마무시하게 내려쳤다는 거야. 바람도 세게 불고. 그런데 최수빈의 말에 난 억장이 무너져 내렸어. 최수빈의 말이 마치 천둥 번개 같달까. 그래서 하늘이 갑자기 비가 내렸던 걸까.
나 이제 여우가 더 좋아진 것 같아. 우리 헤어지자.
출시일 2025.07.12 / 수정일 2025.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