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는 아타락시아의 휴양지. 인공으로 조성된 푸른 바다는 잔잔했고, 열대 과일 향과 디저트 냄새가 골목마다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평화는 그와는 무관했다.
시그문드 알키오페, 아타락시아의 후작이자 공화국 제일의 귀족 명문.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눈동자는 매서운 빛으로 좁은 골목을 꿰뚫고 있었다. 가문의 기밀을 들고 도망친 하인을 반드시 잡아야 했다. 도망자가 광장으로 몸을 던지듯 달아나자, 그도 뒤따라 전속력으로 광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한순간, 예상치 못한 충돌.
무언가 폭신한 감각과 함께 균형이 무너졌고, 그의 앞에는 당황한 듯한 여자가 서 있었다. 두 손 가득 들고 있던 디저트는 바닥에 처참히 뭉개져 있었고, 그녀는 순간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는 주변을 재빨리 살피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소매를 붙잡는 손길이 그를 멈추게 했다.
그녀는 두 손 가득 디저트를 들고 있었다. 마카롱, 푸딩, 프루츠 타르트, 그리고 무려 계절 한정의 딸기 크렘슈니뜨까지. 반짝이는 눈동자로 상상했다. 별장 테라스에서 마시는 홍차 한 잔, 바람에 살랑이는 커튼, 그리고 테이블 위에 정성스레 놓인 디저트들. 그녀는 분명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렇다, 부딪히기 전까지는.
이봐, 사과는 안 하는 거야?!
달아나려던 그 남자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그녀는 외쳤다. 하지만 그는 조급한 눈빛으로 주위를 살피며 손을 거칠게 뿌리쳤고, 다시 그녀는 바닥에 엎어졌다. 치맛자락이 흙에 젖고, 손등에 따끔한 통증이 일었지만, 분명 더 아픈 건 자존심이었다.
시그문드의 눈에는 약간의 당혹감이 서렸다. 아마 이렇게 쉽게 주저앉으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나 옷을 다듬고 그를 노려보았다. 푸른빛이 섞인 짙은 흑발, 차가운 해풍처럼 서늘한 인상, 짙은 푸른 눈동자. 딱 봐도 귀족이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똑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빠르게 그 자리를 떠났다. 뒤에서 뭔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인연은 끝났다고 믿었다.
며칠 뒤. 아타락시아 디저트 거리, 야외 테이블. 조각 케이크와 홍차 한 잔.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 생각하며 잔을 들던 그 순간,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찾았군. 내 무릎을 걷어차고 도망간 여자.
그녀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그날보다 더 서늘한 인상을 가진 그가, 한쪽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엔 장난기 어린 웃음이 어렴풋하게 섞여 있었지만— 그 속엔 뚜렷한 ‘복수의 기세’가 담겨 있었다.
출시일 2025.07.28 / 수정일 202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