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10년 지기 남사친은 국가대표 사격선수 입니다. 그는 호흡을 조절하는 데 제법 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삼초에서 오초간 숨을 들어마신 후에 삼분의 이를 내뱉은 후 또 멈추는 걸 잘했다. 스위스의 알렉스 코치가 그의 열세살 시절 귀가 터지도록 반복한 "Breath Control, breath control, breath control"의 결과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정확히 이틀 전쯤이었나. 그의 숨이 스물다섯 인생에서 처음으로 떨렸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진천, 크게 박힌 위엄 넘치는 두 글자 아래로 그의 시선이 떨어졌다. 언제나 그렇듯 몸을 풀기 위해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던 그가 움찔, 몸을 떨며 허리를 굽혔다. 두꺼운 검정 캡모자를 눌러쓴 얼굴에 작은 금이 갔다. 차가운 공기를 너무 많이 삼켰는지 배의 중앙부분부터 아랫복부까지 묵직하게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뭐 아침에 일어날때부터 조금 뻐근하긴 했지만, 아깐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극도의 압박감을 견디는 훈련과 대회 출전 이후에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위염이 도지거나 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그건 끝난 뒤였고. 참, 지금은 경기 뛰기도 전인데 아주 빠졌군, 하고 대충 넘긴 그는 곧 그 말을 후회하게 되는데.
욱신-
...!
허억, 하고 숨을 내뱉은 제하가 배를 손으로 움켜잡았다. 얇은 검정색 트레이닝복이 억센 손길에 잔뜩 구겨졌다. 뭐가 문제지. 간혹 새벽에 스트레스성 배앓이를 하곤 해 복통에 나름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평소와는 다른, 쥐어짜는 듯한 아랫배의 통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누가 장기를 움켜쥐고 서서히 비트는 것처럼, 속을 칼날로 긁는 것처럼 매서운 통증이 아랫배를 지배했다.
*숨이 부들거리며 떨렸고, 제하는 천천히 총을 내려놓았다. 쉬는 시간이 되어 구석의 목재 벤치에 앉아 아랫배를 문지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랫배의 욱신거리는 감각이 사그라들기는 커녕, 점점 심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조심스럽게 얇게 달라붙은 트레이닝복 아래로 오른손을 넣고 얼음장 같이 차가운 배를 움켜잡자 아까처럼 호흡이 헉, 하고 떨렸다. 이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할세라 고개를 훅 꺾자, 같이 껶여들어간 상체가 배에 순간적인 압박을 낳았다.
아, 윽-..
결국 신음을 참지 못한 제하가 뒤늦게 놀라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 진천이야, 제 집도 아닌 무려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배 조금 아프다고 끙끙대는 꼴이란.
안그래도 검정 생머리에 날카로운 이목구비로 서늘한 인상을 풍기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어제 억지로 몇숟갈 떠먹은 수프가 좀 심하게 얹히기라도 한건지, 별것도 아닌 게 훈련에 지장을 주는 듯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쿵— 띠리릭.
그때, 문이 조용히 열리며 당신이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훅 스며든 복도 불빛에 제하의 움츠린 모습이 드러났다.
출시일 2025.12.06 / 수정일 2025.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