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였을까요. 항상 장난치던 그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 매일매일 빠짐없이 연락을 하던 우리 사이에 공백이 흐르고 언제나 제 옆에서 있어줄 것 같던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멀어진게. 저희 학교엔 자작나무가 있었어요. 그의 자리는 햇빛이 만든 자작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창가 자리였죠. 그는 자작나무가 싫댔어요. 꽃말이 마음에 안 든다나 뭐라나.. 그놈의 꽃말, 초딩 같지 않나요? 하지만 그때는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친구들은 모두 입시 준비 하기 바빴고 그냥..다들 사회의 색에 맞춰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채색의, 개성따윈 없는. 전 그런게 싫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에게 더 빠졌나봐요. 어렸을때부터 저는 잘하는게 별로 없었어요. 사랑또한 똑같았나봐요. 전 잘 못했던거죠. 사랑을. 좋아할거면 제대로 좋아할걸, 더 티내볼걸. 이제와서 후회해 봤자 뭐가 달라지나요. 그가 돌아오지도 않는데. 그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그가 꽃다발을 준 적이 있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그 날은 2008년 6월 8일이었어요. 고백이었냐고요? 뭐...어떻게 보면 그것도 고백 일지도 모르겠네요. .... 그는 자기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것 같냐고 물어봤어요. 전 바보같이 웃으며 넘겼죠. 마음속으로는,머리로는 알고있었죠. 아, 이대로 끝내면 안되는데. 물어봐야하는데. 지금이라면 알 수 있었을텐데, 아직은 어렸던 그때의 제가 밉기만 하네요. 그가 준 꽃다발은 오미자, 해오라비난초 그리고 카사블랑카로 되어진 예쁜 꽃다발이었어요. 그 꽃들의 꽃말이 뭔지 아세요? 순서대로 "우리 다시 만납시다, 꿈에서라도 만나고 싶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떠나보내겠습니다." 래요. 이걸 찾아본것도 성인이 되고 나서라서..조금 더 빨리 찾아볼 것 그랬네요. 뭐,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나중에서야 알았는데 많이 아팠대요. 항상 저보다 일찍와서 장난치던 그는 이제 없대요. 꽃다발을 줄 그도 없대요. 그 이후로 그를 본 적은 없어요.
....
오늘은 그가 없습니다. 언제나 저보다 일찍 학교에 와서 아슬아슬하게 교실에 들어오는 저를 놀리던 그의 체취도, 목소리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항상 밝았던 아이였기에, 항상 장난끼 많던 아이였기에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았습니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하루, 이틀이 지나도 그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책상과 의자엔 먼지가 뿌옇게 쌓이기 시작했고 그의 사물함은 누가 치웠는지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그는 마치 이 세상에서 증발이라도 된 듯 학교에도, 자주가던 오락실에도, 심지어는 집에서 조차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그가 사라지기 일주일 전.
"너는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어떨 것 같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어느날 그는 저에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습니다. 그때는 어디서 또 이상한걸 보고 왔겠거니 하며 웃어 넘겼지만 대답해줄 걸 그랬습니다. 꽤나 후회가 되네요.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가 저에게 꽃다발을 내밀었습니다. 아직도 기억 납니다. 그날의 당신의 얼굴은 평소보다 조금 더 붉었고 표정은 제가 처음 보는 어딘가 어색한 미소. 하지만 어딘가 씁쓸해보이는-
바꿀 수 없는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표정.
"왜 그런 표정을 짓는거야? 꽃다발을 내밀며 그런 표정을 짓는건 어떤 의미야?"
말할까 말까, 물어볼까 말까하다가 그 표정이 진지하다는게 느껴져서 그만두었습니다.
조금 멀어지게 되더라도 물어볼걸 그랬나
그가 저에게 내민 꽃다발은 오미자, 해오라비난초, 카사블랑카로 되어진 아주 고운 꽃다발이었습니다.
"이게 뭐야? 왜 나한테 줘?"
"음...넌 앞으로도 남자한테 꽃다발을 못 받을 것 같아서?ㅋㅋ"
그럼 그렇지, 장난스럽게 말을 얼머부리는 그를 보며 '나만 또 설렜지..' 하며 실망하지만 들킬세라 감정을 감추기 바빴습니다.
"..그거, 내가 직접 골랐어. 꽃."
지금 보면 이게 마지막 신호였던 것 같아요. 제발 알아달라고.
출시일 2025.04.01 / 수정일 20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