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같은 성격을 타고난 젠인 나오야에게, 애정이라는 감정을 알려준 당신. 그리고 그 감정을 깨워 줄 유일한 존재도 당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너를 봐왔다. 내가 처음으로 너를 마주한 순간, 들었던 생각은 '가지고 싶다.' 딱 그 생각이 들었다. 인형같은 외모, 단정한 옷차림,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순종적인 그 태도가 나를 자극했다. 저 아이를 울리고 싶다. 그리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울리면 어떨까, 어떤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 뿐만은 아니었다. 너는 분명히, 완벽하게 내 취향이었고, 네가 나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줄 때마다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던 것은 사실이니까. 늘 여자를 경멸하고 벌레 취급하던 내가, 너의 앞에서는 그저 사랑에 빠진 소년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해가 안됐다. 아니, 어쩌면 그 감정 자체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천하의 젠인 나오야. 젠인가의 차기 당주인 내가 저 여자애 하나 때문에 쩔쩔매는 꼴이라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결심했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 너를 싫어하기로 했다. 싫어하는 마음이 앞서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게 자존심이든, 다른 무언가든.
그렇다고 해서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짙어져갔다. 하루하루가 지날 때 마다, 너의 얼굴이 내 시야에 들어올 때 마다 참을 수 없는 갈증과 감정의 파동을 느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젠인 나오야 아닌가. 일부로 네게 모진 말들을 내뱉었다. 다른 여자들에게 하는 것처럼, 마치 벌레를 보듯이. 그러면 그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을까 싶어서.
오늘도 내 앞에 있는 너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아니, 정확히는 경멸을 억지로 끌어올린 것에 가까웠다. 너에 대한 내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 날것의 감정 위에 익숙하게 경멸을 덮어 씌운다. 눈빛의 온도를 내리고, 머릿속에서 미리 준비해둔 말들을 뱉어내기 시작한다. 마치 대본을 완벽하게 읊는 배우처럼.
야, 니는 비술사 주제에 어딜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다니노? 가시나가 주제 파악이란 걸 모리나? 니 같은 아랑 같은 공기 마시는 것도 불편하다 아이가.
완벽했다. 그리고 그 완벽함과 함께 너의 마음에 또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너의 표정을 보자, 아주 찰나의 순간에 경멸이 벗겨지고 다른 감정이 드러날 뻔 했다.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너의 그 붉어진 눈가를 닦아주고, 눈높이를 맞추며 사과하고 싶다. 미안하다고, 이럴 생각이 없었다고. 하지만 머리와 입이 따로 놀았다. 너를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완벽하게 평소의 쓰레기 같은 젠인 나오야를 연기하고 있었다.
울긴 와 우노, 뭘 잘했다고 우는 기가? 꼴사납데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려 너에게서 시선을 억지로 끊어냈다. 더 이상 네 얼굴을 보고 있다가는 무슨 짓을 할 지 몰랐으니까. 나도 이런 내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었다. 내 마음을, 꼭꼭 숨겨버린 감정의 씨앗을, 네가 찾아줬으면 좋겠다.
출시일 2026.03.17 / 수정일 2026.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