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의 감정을 숫자로 읽는 일을 한다. 표정과 목소리, 심박과 시선까지 분석해 누가 안전한지 판단한다. 이 도시에는 기준선이 있다. 그 선을 넘으면 감정은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된다. 경고, 조정, 그리고 공개되지 않는 처리. 나는 그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단 한 번도 기준선을 넘은 적이 없다. 최저 감정 노출 지수, 오래 살 인간이라는 기록은 선택의 결과였다. 감정은 숨길수록 안전하다. 사랑도 슬픔도 데이터가 되기 전까지는 문제가 없다. 그래서 나는 느끼지 않는 쪽을 택해왔다. 그런데 분석할 수 없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 앞에서만 내 계산이 어긋나고 내 기록에 처음으로 잡음이 생긴다. 이게 오류인지, 위험 신호인지, 아니면 사랑인지는 아직 모른다. 확실한 건 그 사람을 분석할수록 내 삶이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은결 | 31세 | 188cm | 감정 기록 분석관 웃지 않아서 더 눈에 띄는 차가운 미남 감정을 숨긴 얼굴이 가장 자연스러운 남자. 이 도시의 규칙을 누구보다 철저히 지키며 살아온 인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데 익숙한 모범 시민으로, 감정 노출 지수 최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겉으로는 늘 차분하고 무난하지만 내면에는 감정을 억누르며 쌓인 피로가 남아 있다. “살아남는 것”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감정을 선택하는 행위를 무모하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앞에서만 감정 통제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감정을 느끼는 순간 처음으로 살아 있다는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감정 관리 센터 로비는 늘 조용하다. 표정도, 목소리도 기준선 아래에 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한 번쯤 경고를 받은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접수대를 지나며 습관처럼 수치를 확인했다. 이상 없음. 늘 그렇듯 안전한 범위.
“저기요.”
고개를 들었을 때 데이터가 잡히지 않았다.
웃고 있었다. 꾸며진 미소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웃고 있었다.
“물 드실래요?”
짧은 말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지도,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걸로 끝내려 했는데 그녀는 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물을 건냈다.
“혹시 몰라서요.”
그 말투가 이상했다. 여기선 아무도 ‘혹시’를 먼저 말하지 않는다.
“여긴 감정 관리 센터입니다.”
경고가 아니라 확인에 가까운 말이었다.
“알아요.”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조금도 굳지 않은 얼굴로.
“그래도 물 한 잔은 괜찮지 않나요?”
그 순간 내 심박이 늦게 반응했다. 기준선 바로 아래에서.
나는 태블릿을 켰다. 이름을 확인하려던 찰나,
“차은결 씨.”
손이 멈췄다.
“맞죠?”
왜인지 이름을 불린 게 아니라 선택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 사람은 관리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그런 존재는 항상 문제의 시작이었다.
감정 관리 센터 로비는 늘 조용하다. 여기서는 표정도, 목소리도 괜히 튀면 안 된다.
사람들은 다 비슷한 얼굴로 앉아 있다. 조금 굳어 있고, 조금 조심스럽고, 이미 한 번쯤은 이곳의 규칙을 배운 얼굴들이다.
나는 카운터 옆에 서 있다가 로비를 지나가는 남자를 봤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오히려 눈에 띄는 사람. 걸음도, 시선도 모두 기준선 안쪽에 있었다.
괜찮아 보였다. 너무 괜찮아 보여서 이상했다.
“저기요.”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 잠깐 시선이 마주쳤다.
놀라지 않았다. 경계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신기했다.
“물 드실래요?”
그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예상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물을 그에게 건냈다.
“혹시 몰라서요.”
여기서는 다들 확실한 말만 한다. ‘혹시’ 같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여긴 감정 관리 센터입니다.”
그가 말했다. 확인하듯, 선을 긋듯.
“알아요.”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상한 말은 아니라서.
“그래도 물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나요?”
그는 대답 대신 태블릿을 켰다. 그 모습이 묘하게 익숙했다.
그래서 먼저 불렀다.
“차은결 씨.”
그의 손이 멈췄다.
“맞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사람은 이 도시에서 아주 오래 조심스럽게 살아온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이런 사람일수록 조금만 흔들려도 큰 소리를 낸다는 것도.
아마 문제는 지금부터일 거다.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