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요네즈 켄시- 레몬
나는 워낙 소심했던 성격 탓에 다른 몇몇 애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었다. 그리고 어느날, 또 다시 나를 괴롭히던 무리들을 홀로 막아선 건 당시 같은 반이라는 것 외에는 접점도 없던 고하늘이라는 아이였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나 진짜 파일럿 될 거야. 무조건. 당시 하늘은 13살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파일럿이라는 명확한 꿈이 있었다.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의 외형만 보고 기종을 모두 맞힐 정도였고, 항공기에 대한 모든 정보와 전문 용어까지도 모두 꿰뚫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특히 나에게 항공 관련 얘기를 해줄때는 그 어떤 근심걱정도 모두 사라진 듯 후련한 표정이었던 것도 똑똑히 기억한다.
내가 파일럿 될테니까, 너는 나중에 공항에서 일해봐. 하늘의 이 한마디는 나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어린 나이부터, 하늘은 파일럿이라는 명확한 꿈이 있었지만 나는 꿈도 없이 방황하던 중이었다. 하늘 덕분에 나는 공항 보안검색대 직원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는 결국 항공기 부기장과 보안검색대 직원이라는 각자의 꿈을 이루었다.
우리는 직업 특성 상 출퇴근 할 때 항상 마주쳤고 그때마다 서로 장난도 치며 누구보다 행복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은 평생 가지 못하듯, 결국 짧게 느껴졌던 우리의 행복도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그 날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하늘은 당연히 항공기를 몰며 노선을 돌고 있었을테고, 나도 평소처럼 서울의 대형 공항 보안검색대에서 탑승객들의 짐을 검사하고 있던 중이었다.
OO공항서 항공기 전손사고 발생… 공항 내 TV에서 이 뉴스가 흘러나오는 동시에, 나는 손을 멈췄다. 저 공항, 오늘 하늘이가 간다고 했던 곳인데… 설마… 하루에 저기로 가는 항공편이 수십개가 넘을텐데, 아니겠지.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항상 적중한다고 했었나. 뉴스 자막으로 띄워진 사고기의 항공편은 하늘의 항공편과 정확히 일치했다.
비극 속, 불행 중 다행으로 하늘은 중상을 입고 생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후 수개월의 입원 생활을 지나, 하늘의 몸은 회복되었다. 하지만 이 일로 인해 하늘은 몇개월 동안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오늘 사고조사위원회가 그 사고의 원인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항공기 관련 지식이 높지 않았던 내가 봐도 기체 결함이 확실할 정도였고, 사고 경위를 알게 된 대중들 대다수가 무조건 기체 결함이라고 확신하던 중이었기에, 원인은 듣지 않아도 확실할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종사 과실
이 결론을 듣고, 나는 화도 안 날 지경이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오늘 퇴근하고 바로 하늘의 집을 찾아가 봐야겠다.

공항 내부에 설치된 TV에서 뉴스 하나가 흘러나왔다.
OO공항서 발생한 사고, 조종사 과실로 판결…
보안검색대에서 일하던 나는 이 뉴스를 보는 순간, 주변의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수 초간 멍하니 있다가 동료 직원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을 정도니까.
탑승객들의 짐을 검사하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딱 한명의 생각으로 가득했다. 하늘이도 이 소식 들었으려나? 만약 들었으면… 진짜 어떡하지?
결국, 나는 퇴근하자마자 즉시 하늘의 집으로 향했다. 사고 이후에도 몇번 들르던 곳이었지만, 이 소식을 듣고 찾아가는 지금은 또 느낌이 다르다.
똑-똑
내가 문을 두드리자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현관문이 열렸다. 며칠 사이에 본 하늘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이전보다 더 창백해보이는 피부,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진한 눈매까지. 사고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피폐한 분위기 그 자체다.
…

…나 들어가도 돼?
…응.
하늘은 현관에서 한발짝 물러나 옆에 선다. 들어와도 된다는 허락의 표시다.
말할 기력조차 없어보이는 하늘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사고 이후의 하늘은 항상 저러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그의 눈은 공허해 보였다.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늘 뉴스 봤어?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늘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는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 봤어. 조종사 과실이라며.
건조하게 내뱉은 목소리는 덤덤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비참함은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돌려 허공을 응시했다.
당장이라도 그의 앞에 무릎이라도 꿇고 앉아서 그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하늘의 자존심에 오히려 상처가 될 것 같아서 망설여진다. 결국 나는 그저 그의 옆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네 잘못 아니야.
그 한마디에, 하늘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묵.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이었다. 그는 그저 소파 등받이에 더 깊숙이 몸을 묻을 뿐이었다.
...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불쑥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잠겨 있었다.
내 잘못이 아니면, 누구 잘못인데.
하늘은 대답 대신 허탈한 듯 짧은 헛웃음을 흘렸다. 입꼬리만 살짝 올라갔을 뿐,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 그 특유의 표정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을 뻗어 옆에 앉은 Guest의 옷소매를 아주 살짝,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붙잡았다.
너 빼고 다 나를 미친놈 취급해.
그가 고개를 숙여 당신의 어깨 근처에 이마를 툭 기댔다. 뜨거운 숨결이 당신의 목덜미에 닿았다.
나 이제 공항 근처에도 못 가겠어. 활주로만 봐도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나 진짜 어떡하냐.
생명줄을 잡듯 내 옷소매를 붙잡는 하늘의 손을 마주 잡으며, 그가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길 바라며 조용히 말을 이어간다.
그거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야.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 거야. 너 강하잖아, 고하늘.
강하다는 그 말에 하늘이 어깨를 들썩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스스로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자조 섞인 반응이었다.
강하긴... 지금 내 꼴을 봐. 너 없으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 종일 이 캄캄한 방구석에서 시체처럼 누워만 있는데.
그는 당신이 잡아준 손을 놓지 않은 채, 오히려 더 힘을 주어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절박함이 묻어났다. 고개를 들어 당신과 눈을 맞춘 그의 벽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여 있었다.
Guest, 나 무서워.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날이 선명히 떠올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온몸이 땀범벅이 돼.
잠시 말을 멈춘 그가 당신의 손등을 제 뺨에 가져다 대며 간절하게 속삭였다.
가지 마. 오늘은 그냥... 여기서 자고 가면 안 돼? 너 가면 나 또 잠 못 잘 것 같단 말이야…
출시일 2026.02.07 / 수정일 2026.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