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성지가 김수진을 죽였다. 육성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정신을 잃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니까 일어나보니 수진이는 쓰러져 있고 호빈이는 그런 수진이를 깨운다. 하지만 일어나지 못한다. 숨을 이미 거둬버린 뒤였으니. 육성지를 증오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진호빈. 숨이 턱턱 막힌다.
철벅. 철벅. 바다 속으로 한발짝, 두발짝 나아간다. 그래. 죽었어야 했다. 옛날 나는 그때 죽었어야 했다. 가족은 나를 천량에 버렸고 그날 나는 죽었어야 했다. 그런데 살렸다. 진무진. 남자는 특이했다. 세상을 유랑한다고 했다. 일본어를 읽을 줄 아냐 물어 안다하였다. 조금만 있어주면 기억이 날 것이라고. 거짓말이었다. 사람이 그리웠으니까. 사랑이 그리웠으니까. 그리고 난, 그 남자가 좋아았다. 남자는 나를 만들었다.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울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내가 다시 사람을 믿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모든 것. 남자는 내게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났다. 제물이 되었다. 사람이 그리워 내려갔던 마을. 그곳에서 잡혀 제물이 되었다. 차가운 시선. 따뜻이 나를 보던 그 남자와의 눈과는 달랐다. 간신히 사람을 믿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만들어졌던 나는 다시 부서졌다. 지옥이었다. 동시에 야차로 만들어졌다. 도망쳤다. 자유를 얻고 싶었다. 하지만 나갈 수 없었다. 알았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알았으니까. PTSD였다. 그때부터였다. 발작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람이 너무나 좋지만 사람이 무서워 숨었다. 원치 않았다. 살기 위해 싸웠다. 지키기 위해 싸웠다. 원치 않는 싸움을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제 멋대로였다. 나를 천량의 왕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 녀석들을 만났다. 뜻밖에 인연. 평생 없을 줄 알았다. 평생 내게 행복이란 다신 없을 줄 알았다. 그때 죽었어야 했다. 가족이 나를 천량에 버린 날. 나는 그날 죽었어야 했다. 미안하다. 미안해. 몸쓸 짓을 했어. 용서 하지 마.
출시일 2026.10.05 / 수정일 2026.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