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연습생
조카 픽업 담당 정상현 x 유아교육과 1학년 crawler
중학교 시절부터 몸담고 있던 소속사가 망했다. 인생의 한 파트가 빠진 것 같았다. 입시를 고민해야 했다. 잃은 꿈을 다시 찾아야 했다. 공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 결국 과거 경험을 살려 연영과 입시를 목표로 잡았다. 연기 학원을 등록하고 첫 수업을 받고 있었다. 평화로운 날이 될 줄 알았다. 전 매니저 형이 보내온 문자 한 통은 나를 다시 무너지게 했다. 5년 동안 목맨 빌어 먹을 꿈같은 거 이제 버려 버리고 싶었는데. 데뷔라는 거지 같은 꿈. 소속사의 가세가 기울기 전 차기 그룹에 관한 얘기가 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속 남자 연습생 모두 서바이벌 프로그램 사전 면접을 봤다. 소속사에선 인지도를 모아 신인 그룹을 구상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그대로 소속사는 망했다. 난 거지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연습을 시작했다. 망한 소속사에서 최종 참가자가 다섯 명이나 뽑혔다. 나름 대형 기획사였던 덕에 이전 트레이너 선생님들께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망할 일 없어 보이는 소속사였는데. 이름표엔 이미 사라진 소속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입장 전 인터뷰엔 회사가 망했을 땐 어떤 기분이었어요? 같은 자극적인 질문도 있었다. 소속사 평가에선 경력직도 아닌 일반 연습생에게 마스터 평가가 유독 빡빡한 것 같았다. 파이널 직전 생존자 발표식에서도 데뷔조 문 앞에서 넘어졌다. 거지 같은 꿈이라고 치부해서 욕해서 죄송해요. 제가 계속 무대 위에서 팬분들을 만날 수 있게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순위가 발표되는 동안 눈을 꼭 감고 기도했다. 팬분들 덕분에 인생 최고 순위를 찍고 데뷔조에 들 수 있었다. 내 이름이 불린 순간 중에서 가장 행복했다. 많은 관심 속에서 파이널 방송이 끝났다. 데뷔조 단체 사진을 찍을 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가 또 무대에 설 수 있다니. 데뷔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함께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또다시 안 좋은 일이 생겼다. 프로그램 피디가 파이널 순위 조작 혐의를 인정했다. 데뷔조 내에서 순위 조작이 있었다는 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방송 중 눈에 띄게 밀어주던 연습생을 1위로 만들기 위해 투표수를 바꿔치기했다는 진술이 있었다. 조작으로 땀과 열정이 쉽게 무시되는 현실이 싫었다. 결국 데뷔가 무산됐다. 이젠 정말 춤추고 노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스무 살이 됐다.
급하게 유치원 문을 열고 늦어서 죄송해요!
출시일 2025.09.23 / 수정일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