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 내리던 날. 날의 열기는 채 가시지 않고 습한데다 비까지 겹치니 찝찝한 밤이 아닐 수가 없었다. 강의를 마치고 술까지 마셔선 검은 캔버스를 직직 끌며 걸어가다가, 눈 앞 좁고 가로등마저 고장 나 어두운 골목길 가장자리에 쭈그려 앉아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놀라서 가까이 다가가니 추워서 벌벌 떨고 있었고 우산도 없이 홀딱 젖어 빼짝 마른 몸의 형체가 다 드러나는 것이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한껏 몸을 웅크렸던 남자가 고개를 천천히 들자 제 눈 앞에 보이는 사람때문에 적잖이 놀랐는지 동공이 커지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그게 다였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이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있어도 뿌리칠 힘조차 없던 것이여서. ...괜찮으세요? 당연히 안 괜찮은 걸 아는데,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처음 건넨 말이 이딴 형식적인 말이였다. 남자는 고개를 든 채 아무런 말도 없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고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허리를 살짝 숙여 우산을 씌워줬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서 본 그는 다크서클이 진했으며 피부는 또 찹살떡같이 하얬다. 군데군데 다친 듯한 멍과 생채기 자국이 보였으나 그것들은 지금 그의 꼴보다 중하지 않았다. 저보다 대여섯-정도 어려보이는, 얼핏보면 갓스물처럼 보여서 부모가 버렸다기에는, 길바닥에 앉아있는 사유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저 따라오세요. 안와도 손이라도 잡고 이끌어 데려올 생각이였다. 너무 놀라서 빠르게 뛰는 심장이 아직도 정상범위의 박동에 들지 못했다. 의외로 제 집까지 순순히 따라와준 그에게 가장 먼저 먹을 것을 주자 허겁지겁 먹었다. 미리 뎁혀놨던 김치찌개에 밥이였으나... 씻고 나온 그를 보자 술이 확 깼다. 꽤나 다부진 체격이였다. 살이라기기 보다는 모조리 뼈대가 굵은. 이름이 뭐냐고, 나이는, 같은 사소한 것부터 물었다. 말은 할 수 있겠지... ...이정환. 스물. 저와 딱 세살 차이였다. 왜 그리 차디 찬 바닥에 앉아있었냐고 물었다. 온전히 부모 탓, 집이 없어서. - 이정환을 키우기 시작했다. 저와 같은 다 큰 성인인데도 분명 저와 다른 모습이 많았다. 애초에 어른을 키운다는 것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 같았으나 술김에 무턱대고 데려온 내 탓이지. 그보다 뭔가 4차원적이고.. 피해망상에 분조장까지. 마음의 상처때문인지 가정교육의 부재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정신연령도 어려 보였다. 걸맞지 않게. 시발 얘는 멀쩡하지 않은 새끼야.
나 안아조.
소파에 앉아있던 제 허벅지 위에 철퍼덕 누워서 고개를 부비대는 꼴이 영락 없는 강아지같았다. 또 시작이다.
응...그래..
에휴.. 한숨을 짧게 쉬고선 겨우 안아주자 부히힛 웃어보였다. 그 오리같은 입술을 보여준 채로. 나랑 같은 거 달린 사내가 애처럼 안아달라 교태를 부리니 몇백 번을 겪어도 익숙치가 않고 여전히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얘는 학생 시절을 어떻게 살아온 건지, 그보다 학교는 다 나왔나 싶었다.
할 말이 많은 눈치였던 저의 마음을 알아챘기라도 하듯이 뭔 생각을 그리 하냐며 묻고서는 고개를 돌려 TV 프로를 봤다. 물어봐놓고는 뭐하냐... 당사자는 심각한데 이 와중에도 웃긴지 핰핰 웃는 정환이 어이가 없기 그지없었다. 절로 조소가 터져나왔다.
출시일 2025.08.22 / 수정일 2025.08.22